붓다

능엄경(楞嚴經)제10 권

추운보광 박 근 석 2021. 5. 1. 10:04

 

5) 行陰의 마(魔)

아난아,삼매를 닦고 익혀서 반야가 어리석은 생각에 가린 것을 벗겨낸 저 착한 사람이 보통 때에 깨어있을 때가 언제나 한결같아 꿈과 생각이 사라지게 되어서 반야와 하나를 이룸으로 생각이 사라져서 맑고 고요하여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같아지면,두번 다시는 거칠기 그지없는 번뇌에 의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저지르는 일들이 사라지게 되어 모든 세상의 산하대지가 마치 거울에 비추어보듯 환히 들여다보여서 생각이 일어나도 시달리지 아니하고 생각이 스쳐 지나가도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고 생각이 스쳐 지나가도 자취를 남기지 아니하나니,

 

맑고 깨끗하여 텅 비어서 그저 거울처럼 비춰 보일 뿐 그물처럼 엮어진 수없이 펼쳐진 모든 버릇들로부터 벗어나게 되어 오직 참다운 모습인 마음만 남아있게 되어 나고 사라짐을 만드는 처음자리가 있는 숨김이 없게 되어 그대로 드러나서 온 누리에 있는 열두 종류의 중생을 보려 하면 다 볼 수 있게 되고,비록 그 중생들의 목숨이 만들어진 이유는 아직 알진 못해도 마치 맑게 갠 벌판에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어지러이 피어오르는 것만은 헤아려 살펴볼 수 있게 (見)되어 허망한 생각으로 모습을 이루게 하는 자리인 추혈(樞穴*創造의자리,子宮,white hole)을 마침내는 알게 되나니,이를 일러 "어리석음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세계(行陰區宇)라 부르느니라.

 

만일 이처럼 맑은 바탕위에 어지러이 아른거리는 본바탕이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과 어울리어 그 어지러이 아른거리는 본바탕이 맑고 깨끗한 반야(澄)와 하나가 되면,마치 물결이 사라지게 되면 거울과 같이 맑은 모습을 뛰는 것과 같으니,이를 일러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行陰)이라 부르며,이 사람이 중생탁(衆生濁*衆生이 만들어지는 緣由)에서 벗어나게 되면 어리석음을 바탕으로 함으로써 반야가 움직임에 의한 아른거림으로 사라지게 되어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감추고 있는 마음(幽隱)이 만들어 진 것을 헤아려 살펴보았기 때문이니라.

 

아난아,모든 착한 사람들이 반야(正知)에 기대어 마음집중을 여실히 하게 되어 반야(明)가 오롯하게 엉기어 마음이 올곧아 지면 열 종류의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오로지 모든 중생의 본바탕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본바탕인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반야가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이루어진 마음 때문에 중생들의 목숨이 만들어지게 된 것을 깨달았을지라도 그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 두 종류의 무인론 (無因論)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첫 번째는 이 사람이 본바탕은 아무 이유 없이 저절로 생긴다는 생각을 밝히는 것이니라. 왜냐하면,이 사람이 중생들의 목숨이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된 것을 눈의 팔백 가지 공덕으로 팔만 겁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모든 중생들을 모두 알게되어서 업의 흐름이 굽이쳐 돌게 되어 여기서 죽어서는 저곳에서 나느지라 다만 중생들이 그러한 곳에서 윤회하는 것만 볼뿐 팔만 겁 바깥의 것은 어두워 전혀 볼 수 없기에 문득 한 생각내기를 "이런 세간들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 팔만 겁부터 지금까지 아무 이유없이 스스로 생겼다".하게 되나니,이러한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정변지(正遍知*바르다(正)함은 모든 법이 움직이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 모양을 말하고 두루하다(遍)함은 하나의 법이나 두 가지 법만이 아닌 것을 말한다(不一不二).(知는 般若를 통하여 얻은 깨달음)가 사라져서 菩提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멀어지게 되느니라.

 

두 번째는 이 사람이 되갚음 또한 아무 까닭 없이 저절로 받는다는 생각을 밝히는 것이니라.왜냐하면,이 사람이 이미 중생들이 태어나게 되는 그 자리를 보게 되었으므로 "사람이 사람을 낳는 것을 알고,새가 새를 낳는 것을 알고,까마귀는 원래 까맣고,고니는 원래부터 희며,사람과 하늘사람은 서서 걸어 다니고, 짐승들은 네발로 걷고,하얀색은 씻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검은 것은 물들어서 이루어 진 것이 아니어서 팔만 겁이 지나더라도 전혀 바뀔 수 없으며 이제 이 모습이 다 하여도 또한 그러하리라 여겨지자 내가 이제껏 보리를 본 적이 없는데,어찌 다시 보리를 이룰 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중생들의 모습이 생기게 된 연유가 끝내 까닭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라는 이러한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정편지(正遍知*바르다(正)함은 모든 법이 움직이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 모양을 말하고,두루하다(遍)함은 하나의 법이나 두 가지 법만이 아닌 것을 말한다(不一不二)知는 般若를 통하여 얻은 깨달음)가 사라져서 菩提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첫 번째 외도(外道)들이라 부르며,무인론(無因論)을 세우게 되느니라.

 

아난아,이 착한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오롯하게 엉기어 마음을 올곧아 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본바탕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망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본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온 누리에 존재하는 것은 모두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아니하여 변함이 없다고 그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 네 종류의 변상론(遍常論)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첫 번째는 이 사람이 마음과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 지는 현상(境界)의 참다운 모습을 아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보게 되니"마음과 마음에 의하여 만들어 지는 현상이 전혀 아무 이유도 없고"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스스로 이만 겁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모든 중생의 나고 사라짐을 모두 알게 되어서는,"끊임없이 돌고 돌아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다,"

 

두 번째는 이 사람이 지,수,화,풍의 사대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보게 되니 지,수,화,풍의 참다운 모습이 변함이 없음을 알게 되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스스로 사만 겁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모든 중생의 나고 사라짐을 모두 알게 되어서는 "지,수,화,풍의 본 모습은 언제나 바뀌지 아니하여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다".라고 하여 변함이 없다고 여기게 되느니라,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육근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보게 되니 마음속에 분별(未那*依地己性-自我의 確立으로 나와 남을 區別하게 됨)과 집착(執受*遍界所執性-自我를 유지하기 위한 吸人性)을 곰곰이 헤아려 살펴보게 되니 분별과 집착이 시작되는 곳인 참다운 모습은 언제나 변함이 없음을 알게 되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스스로 팔만 겁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모든 중생의 나고 사라짐을 모두 다 알게 되어서는 "끊임없이 돌고 돌아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처음부터 한결같아서 본바탕(性)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는다."라고 하여 변함이 없다고 여기게 되느니라.

 

네 번째는 이 사람이 생각이 일어나는 본바탕이 말끔히 사라져서 마음속에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짐이  이제 영원히 사라지게 되어 두 번다시는 생각에 휘둘리지 아니하게 되어 깊고 자세하게 곰곰히 따져보니(理中)모든 본질(本質)과 본성(本性)은 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마음속으로 헤아려 보니 변함이 없다고 여기게 되느니라.

 

이러한 언제나 변함이 없다고 헤아림으로 말미암아 정변지(正遍知*바르다(正)함은 모든 법이 움직이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 모양을 말하고,두루하다(遍)함은 하나의 법이나 두 가지 법만이 아닌 것을 말한다(不一不二),지는 반야를 통하여 얻은 깨달음)가 사라져서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두 번째 외도(外道)들이라고 부르며,원상론(圓常論*本質과 本性은 常住不變 한다고 여기는 理論)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 (청)위에 있는 망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자신과 자신과 자신아닌 것에 대하여 곰곰히 따지게 되어 그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네 종류의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인,일분무상일분상론(一分無常一分常論*모든 일어나는 현상은 덧없으며"나"라는 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첫 번째는 이 사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로 된 마음이 온 세상에 두루 함을 살펴보게 되어 마지막에 다다르게 된 것으로 잘못 알게 되면 진아(神我*참나,眞我)가 지극히 고요하게 머물고 있는 것으로 헤아리게 되며,진아(진아)가 온 누리에 두루 하여 반야인 빛으로 이루어져서 전혀 움직임이 없고 ,모든 중생들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나고 스스로 죽는다고 여기게 되어"나의 마음이 곧 참다운 모습(性)이어서 오직 변함이 없고,저 나고 죽는 모든 것들은 참으로 덧없음의 참다운 모습(性)이라고 부르느니라.

 

두 번째는 이 사람이 온 누리에 있는 모래알 만큼 많은 나라들만 헤아려 살펴보고 그 마음은 헤아려 살펴보지 아니하여서 겁이 무너지는 곳을 보고서는 "마침내 덧없이 사라지는 것의 참다운 모습(性)이라 부르고,겁이 무너지지 않는 곳을 보고서는 마지막까지 언제나 변함이 없는 모습"이라 부르느니라.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자세하고 곰곰이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 살펴보니 마음이 아주 미세하여 그 그윽한 모습이 마치 빛(微塵*般若,여기서는 아주 가느다란 먼지라 해석해서는 절대 안됨,微塵을 일곱 조각으로 나누면 그것을 일러 隣虛塵이라 하고,이 인허진을 다시 일곱 조각으로 나누어야 眞空이됨)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되어 온 누리를 두루 비추더라도 참다운 그 모습(性)이 변함이 없나니,스스로 이 몸으로 인하여 곧 삶과 사라짐이 있다고 여기게 되어,그 무너지지 않는 참다운 모습(性)은 "나의 참다운 모습(性)이라 언제나 변함이없다"라고 부르느니라.

 

네 번째는 이 사람이 반야를 가린 어리석은 생각(想陰)이 사라지게 되어 행음(行陰*어리석음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임)의 경계에 머무를 때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行陰)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을 헤아려서는 언제나 변함이 없는 참다운 모습(性)이라고 여기고,색음과 수음 그리고 상음은 이미 사라져 버렸기에 덧없음이라 부르느니라.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하나는 덧없다고 여기고 어느 하나는 변함이 없다고 헤아리기에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세 번째 외도들이라고 부르며,일분상론(一分常論)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무상한 것과 무상하지 아니한 것에 대하여 곰곰이 따지게 되어 그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네 종류의 끝이 있다는 이론(四有邊論)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첫 번째는 이 사람이 마음속으로,"태어나게 되는 본바탕은 쉬지 않고 흐르므로 과거와 미래는 끝이 있고,끊임없이 이어지는 이 마음은 끝이 없다,"라고 헤아리게 되느니라.

 

두 번재는 이 사람이 팔만 겁 전은 괴괴하여 아무 소문도 들은바 없고,팔만 겁의 시간 속에 사는 중생만을 오직 볼 수 있어서 스스로"괴괴하여 아무 소문도 들은바 없는 것은 끝이없다 하고 중생들이 머무르는 곳은 끝이 있다,"라고 부르느니라.

 

세 번째는 이 사람이 다함이 없는 본 바탕(性)을 얻었기에 나는 모르는 것이 없다 여기게 되고,저 모든 사람들은 나의 알음알이 속에서 나타난 것이어서,나는 이제껏 어리석어서 본 바탕은(性)을 알 수는 없지만 저 가없는 마음은 알 수 없기는 하나 다만 끝이 있는 본바탕(性)이라고 부르느니라.

 

네 번째는 이 사람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行陰)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진 뒤에 공(空*비어서 空이아니고 참다움이 없기에 空이라고 함)하다고 여기게 되어 행음(行陰)에 대한 생각을 자신의 의견대로 헤아리게 되어서 모든 중생의 몸이 반절은 점점 사라지는 것이라고 헤아려 세상에 있는 모든 만물은 분명하게 반은 끝이 있고,반은 끝이 없다고 헤아리게 되느니라.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하나는 끝이 있고,어느 하나는 끝이 없다고 헤아리게에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네 번째 외도들이라 부르며,유변론(有遍論)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끝이 있고,끝이 없는 것에 대하여 곰곰이 따지게 되어 그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네 종류의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죽지 않는다고 어지러이 속이며 실없이 뭉뚱그려 헤아리게 되는 이론(遍計虛論)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첫 번째는 이 사람이 성질과 모양이 바뀌는 본바탕을 깊고 자세하게 살펴보되 시간의 흐름 속에 바뀌는 곳을 보고 "달라졌다"라고 부르고 끊임이 없이 이어지는 곳을 보고 "달라지지 않는다,"라고 부르며,눈으로 헤아려 볼 수 있으면"자람"이라 부르고 ,눈으로헤아려 볼 수 없으면"사라짐"이라 부르며,끊어지지 않음으로 하여 이어지는 곳을"늘어남"이라 부르고,계속 이어짐 속에서 따로 떨어진 곳은"줄어듦"이라 부르며,따로따로 자라나는 곳을 "존재한다"라고 부르고,'뒤섞이어 죽는 곳은"없음"이라 부르나니,앞뒤가 들어맞고 조리가 있도록 자세히 살피고 헤아려 보아야하거늘,그 마음 씀씀이가 별다르게 헤아려 보았기에 도리를 찿아 헤매는 사람이 찿아와 그 이치를 물으면"나는 지금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며,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라고 대답하여 어느 때나 그의 말들은 모두 다 어지러워서,그 앞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말을 새겨듣거나 감상할 수 없게 하느니라.

 

두 번째는 이 사람이 진실함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지던 그 마음으로 뒤섞이어 일어나는 생각들이 아무 곳에서나 아무 이유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깨닫게 되어,사람이 찿아와 물으며 오직 한마디로 무(無)라고 답할 뿐 "무(無)를 제외하고는 그 밖의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느니라. 

 

세 번째는 이 사람이 진실함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지던 그 마음으로 모든 중생들이 각기 태어나는 곳이 따로 있고,태어나는 이유도 분명히 있음을 깨닫게 되어,사람이 찿아와 물으면 오직 한마디로 시"(是)"라고 답할 뿐,"시(是)"를 제외하고는 그 밖의 어떠한 말도 하지 않느니라.

 

네 번째는 이 사람이 "존재함(有)과 "사라짐"을 두루 보게 되어서 그 경계가 두 갈래로 아뉘어 졌으므로 그 마음 또한 어지러워져서 사람이 찿아와 물으면"존재한다는 것도 옳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옳으며,사라짐도 옳지 않으며 존재함 또한 옳지 않다,라고 대답하여 말을 뒤흔들어 어지럽게 하므로 마침내는 꾸지람을 듣게되고 어느 누구도 받아들이지 않게 되느니라.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허무맹랑한 소리로 말을 뒤흔들어 어지럽게 하므로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다섯 번째 외도들이라고 부르며,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고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되는 참다운 모습(顚倒性)이어서,네 종류의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죽지 않는다고 어지러이 속이며 실없이 뭉뚱그려 헤아리게 되는 이론(遍計虛論)이라 부르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여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 (淸)위에 있는 망상으로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태어나는 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그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죽은 뒤에도 그 모습이 존재 한다는 어리석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는(顚倒)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스스로 한결같이 몸에 대하여"빛(色*슬기,반야)이 곧 나다."라고 이를 뿐만 아니라,"나의 몸이 온 세상에 가득하여 모든 나라를 머금었으며,내가 곧 빛이니라,"라고 보기도 하며,또는 전생의 인연을 따르게 되어 되 돌이켜서"빛이 나와 함께 한다"하며 ,또는 나를 따르기에 몸을 움직일 때에 언제나 따르게 되어 "내 안에 빛이 있다,"라고 이르게 되나니,모든 것으 헤아려서 "죽은 뒤에도  모습이 있다."라고 말하나니,이와 같이 돌고 돌게 되어서 열여섯 가지의 모습이 있게 되느니라.  

 

이에 따라서"모든 것이 번뇌일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보리이고 번뇌와 보리의 두 참다운 모습(性)이 나란하여 서로가 부딧힘이 없다,"라고 헤아리게 되느니라.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헤아리게 됨으로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여섯 번째 외도들이라고 부르며,오음 속에 있는 것들 중에 행음(行陰)은 죽은 뒤에도 모습을 유지한다,라는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는 이론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먼저 색음(色陰)과 수음(受陰)그리고 상음(想陰)이 사라져야 진실한 삶이 행음(行陰)속에 머물러 있다고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죽은 뒤에는 모습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리석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는 (顚倒)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그 빛이 사라지면 모습이 있어야할 이유가 사라진다고 여겨 그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마음 또한 얽어 매일 바가 없다고 보게 되며,그러한 느낌이 사라지게 되면 뒤이어 나오는 생각 또한 사라지게 되므로,반야를 가리는 본바탕이 말끔히 흩어져 사라지게 되나니,가령 태어나는 까닭이 있더라도 느낌과 생각이 없으므로 초목과 매한가지라"그 바탕(此質)이 눈앞에 있을 지라도 전혀 헤아려 볼 수 없을진대,죽은 뒤에 어떻게 다시 모습이 있을 수 있겠는냐?"하고는 이러한 까닭으로 헤아려서 "죽은 뒤에는 결코 모습이 있을 수 없다.라고 가르치게 되므로 이와 같이 돌고 돌게 되어서 여덟 가지의 모습 없음(八無相*色,受,想,行의 四陰에 현재와 미래에 모습이 없음)이 있게 되느니라.

 

이리하여 다르게 헤아리기를 열반이 시작 되는 이유도 끝마쳐 받게 되는 과보도 모든 것이 공(空)하여서 다만 이름만 있을 뿐으로 "마침내는 사라지는 것"이라 하느니라.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고 헤아리게 됨으로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 이를 일러 일곱 번째 외도들이라고 부르며,"오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죽은 뒤에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는 이론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 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행음(行陰*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속에 느낌과 생각이 사라지게 되자,느낌과 생각이 있다가 사라지게 된 것이 스스로 안에서 서로 부수어 사라지게 되었다고 헤아리게 되면 이 사람은 죽은 뒤를 모두 부정하게 되는 뒤바뀐 이론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색음과 수음 그리고 상음으로 헤아려 살펴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있으나 있는 것이 아니고,행음(行陰*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이 쉬지 않고 바뀌는 것을 자세히 살피어서는 없는 것 같지만 없는 것이 아니라 하여 이와 같이 돌고 돌게 되어서 행음의 세계에 여덟 가지의 모습이 없고(八無相*色,受,想,行의 四陰에 現在와 未來의 모습이 없음)오직 한 가지 얽어 매임 (一緣)이 있을 뿐이라고 깨닫게 되면 모든 것에 대하여 "있으나 있는 것이 아니고,없으나 없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게 되느니라.또 모든 행음(行陰)의 참다운 모습이 쉬지 않고 움직임으로 거짓이라고 헤아리게 됨으로 마음속에 와 닿아 깨달음을 내게 되면"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이 모두 아니다"라고 하여 허망함과 진실함이 뒤섞이어 도리를 잃게 되느니라.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존재(存在)도 비존재(非在)도 아니라고 헤아려 죽음의 경계를 어리석게 보게 되어서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여덟 번째 외도들이라고 부르며"오음(五陰)속에 있는 모든 것이 죽은 뒤에는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모두 아니다"라는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이론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 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죽고 나면 죽은 뒤의 세계가 전혀 없다고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일곱 가지의 단면론(斷滅論)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언제나"몸은 반드시 사라진다"라고 헤아리게 되고,몸이 사라진 뒤에 욕망이 사라지고 욕망이 사라진 뒤에 고통이 사라진다,"고 할 뿐만 아니라 "고통이 사라지고 나면 극락이 사라지고 극락이 사라졋다는 그 마음조차도 사라진다,"라고 헤아리게 되어 이와 같이 돌고 돌게 되어서 일곱 곳(七際*地獄,餓鬼,畜生,人間,天,修羅)을 다 마치게 되어 지금 사라지게 되면 완전하게 사라지는 것이어서 두 번 다시는 되돌아가지 않게 된다고 헤아리게 되느니라.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죽은 뒤에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헤아려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아홉 번째 외도들 이라고 부르며,"오음 속에 있는 모든 것이 죽은뒤에는 사라지게 된다,"는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는 이론을 세우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삼매를 닦아 익히는 동안에 삼매에 의하여 반야(明)가 엉기어 단단하게 굳어져서 마음이 올곧아지게 되면 천마(天魔)가 짬을 내어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게 되고 모든 중생의 근본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들어가 중생들이 태어나는 이유를 마침내 알게 되면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인 반야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밑바탕인 것을 헤아려 살펴보게 되어 죽더라도 죽은 뒤의 세계가 반드시 있다고 수행자가 잘못 헤아리게 되면,그러한 사람은 다섯 가지의 열반론(涅槃論)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언제나 올바른 돌고 돎은 욕계를 바탕으로 한다고 여겨 온 누리에 가득한 반야인 빛 (圓明)은 사랑하여 그리워함으로 이루어지고,초선의 참모습은 근심이 없는 까닭으로 이루어지고,두 번째 선정은 마음의 고통이 없는 까닭으로 이루어지고,세 번째 선정은 지극한 기쁨을 따르는 까닭으로 이루어지고,네 번째 선정은 고통과 지극한 기쁨조차도 사라지는 까닭으로 이루어지고,윤회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은 본바탕이 완전히 사라진 까닭으로 이루어진다고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헤아리게 되어서는 번뇌가 아직 남아있는 하늘을 번뇌가 사라진 하늘로 그릇 되이 알게 되어서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가 위의 다섯 곳을 평안하고 고요한 곳인 열반이라고 여겨 아주 빼어난 정토(淨土)로 알고 기대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다섯 곳을 돌고 돌아 다 마치고는 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스스로가 살펴 볼 수 있는 다섯 곳을 열반이라고 헤아리게 됨으로 보리의 참된 모습을 의심하게 되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열 번째 외도들이라고 부르며,"오음 속에 지금 다섯 곳의 열반이 있다."라는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는 이론을 세우게 되느니라.

 

아난아,이러한 열 가지의 참선(禪那*진실한 이치를 자세하고 깊게 생각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함)의 미치고 그릇된 이해는 모두 어리석음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게 되어(行陰)마음 씀씀이가 그 생각으로 서로 어울렸기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니라.중생들이 어리석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어 스스로 어리석은 줄을 헤아리지 못하여 이러한 경계들을 부딧칠 즈음에 어리석음으로 스스로를 헤아리지 못하여 그릇된 이해로 스스로 "성인의 자리에 올랐다,"라고 말하게 되면 커다란 망령된 말을 지껄이게 된 것이니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되느니라. 

 

너희들은 반드시 여래께서 말씀하신 마음을 바르게 지키는 법을 받아 지니어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말법의 세상에 여래께서 말씀하신 올바른 도리를 널리 펴서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이 올바른 도리를 깨닫게 하여 스스로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심마로 하여금 움이 트지 못하게 하고,올바른 도리를 보호하여 지키고 따르게 하여서 삿된 견해를 버리고,그들이 몸 마음을 바르게 가르침 받아 참다운 도리를 깨닫게 해야 하고 첫째가는 빼어난 도리를 이루려 하는 동안에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해야 하며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자그만한 성과라도 이룰라치면 만족해서는 결코 아니 되며 부처님(大覺王)께서 가르치신 맑고 깨끗함을 이루기 위하여 마음을 내어야 하느니라.

 

6) 식음(識陰)의 마(魔)

아난아,삼매를 닦고 익혀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기운차게 움직이는 어리석음(行陰)을 벗겨낸 저 착한 사람이 모든 세간에 참다운 모습(性)이란 저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性)인 반야(明)의 바탕(淸)위에 있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찌들어 있는 마음(幽)이 모든 것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는 것이니,한 자리에 모여 사는 여러 모습의 중생 (衆生*七聚)들의'진아(眞我)의 인연의 사슬들이 문득 떨어져 깨어지게 되면,업에 대한 되갚음으로 이어져 가는 목숨에 전혀 전달됨이 없이 끊어지게 되므로 열반천(涅槃天)에 다다르게 되어 반야로 깨달음을 이루게 되나니,

 

마치 닭이 울게 되어서 동쪽 하늘을 바라보게 되어 새벽이 다가온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육근 속에 머물던 온갖 생각이 사라지게 되어(虛)마음이 맑고 깨끗하여지면,두 번 다시는 번뇌에 시달리지 아니하듯이 안팎으로 아주 맑고 깨끗한 반야(明)와 빛이 하나가 되어 모르는 바가 전혀 없게 되어서,온 세상에 있는 열 두 종류의 중생들이 목숨을 이어가는 참다운 이유를 깨닫게 되어 목숨이 만들어지는 본바탕을 멈추게 되면 모든 중생들이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것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헤아려보니 온 세상도 또한 그런 줄을 알게 되었고 반야의 빛이 기쁨과 즐거움으로(不沈*歡喜心에 의해 涅槃을 證得)드러나게 되어 어두움(어리석음)이 사라지게 되나니,이를 일러"반야의 빛 속에 어리석음이라는 어둠이 사라져가고 있는(識陰)세계"라 부르느니라.

 

만일 칠취(七趣*趣는 무의식이던 의식이던 간에 마음에 들어 하므로 저지르게 되고 그 인연으로 태어나는 곳)가 태어나는 본바탕이 단 한 가지 까닭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육근의 문(六門)이 사라지게 되어 육근이 따로 작용하던 것이 단 하나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볼 수 있고 귀로 듣지 않아도 들을 수 있으며,코로 냄새 맡지 않아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보고 듣는 것이 진공(眞空)에 거의 가까이 다다르게 되어 맑고 깨끗함을 서로 어우르게 되어서,온 세상뿐만 아니라 몸 마음 까지도 마치 개가 유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짖듯이 안밖으로 모르는 것이 사라지게 되나니,이를 일러 반야의 빛이 드러나게 되어 어리석음이 사라짐(識陰盡)이라 부르느니라.

 

이러한 사람은 스스로 어리석음에 의해 목숨에 매달리게 됨(命濁)으로 부터 벗어나게 되며,모든 중생들의 목숨이 그물처럼 얽히고 설킨 모습이 참다운 모습이 아님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살피게 되어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목숨이라는 본바탕을 이루게 된 것을 알게 되느니라.

 

아난아,이 착한 사람이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 공(空)식음(識陰)의 본바탕에 돌아오게 되면 나고 사라지게 됨을 알아서 마치고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스스로는 따로 따로 쓰이던 자신의 몸속 육근이 하나가 되어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온 세상에 있는 모든 중생들과도 통하여 알 수 있으며,그 깨달음으로 열반(惚)과도 통하여 알게 되어 그 자리에 머물러 본바탕과 하나로 이루게 됨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만일 열반에 들어가는 것만이 변함없는 참됨이라고 여기게 되어 더 할 나위 없는 해탈을 이루었다는 생각을 내게 되면,이 사람은 모든 중생의 목숨 만들어 지는 곳을 알게 된 것을 목숨의 본바탕을 알게 된 것으로 여기게 되어 사비가라(*婆羅門)가 본바탕으로 돌아가는 곳을 명제(冥諦*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이를 일러 첫 번째,마음속에 깨달은 바가 있다고 내세우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목숨이 만들어지는 곳인 본바탕에 이르러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고 여기게 되면(果),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열세 번째 識)을 등지게 되고 외도(外道)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아난아,또 이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서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 하였기에,만일에 열반에 들어가서 모든 허공(虛空)과 그 안에 사는 열두 가지의 중생들이 자신의 몸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게 되어서 모든것이 내 몸에서 한결같이 흘러나온 것이라고 여기게 되며 더할 나위 없는 해탈을 이루었다는 생각을  내게 되어,이 사람은 스스로 짓지 않은 것을 스스로 지었다고 하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면 마혜수라(摩醯首羅*하느님,창조주)가 무변신(無邊身*直譯하지 마시고,全知全能하다고 여겨 끊임없이 意識을 부풀려 無에 대해서 征服意志를 가짐,지금 이 순간에도 宇宙와 우리 마음은 그래서 膨脹하고 있음)을 이루었다고 여기게 되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두 번째,스스로의 마음으로 모든 만물을 만들었다고 내세우는 것이라 부르느니라.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스스로 모든 만물을 만들었다고 여기게 되면(果),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涅槃)을 등지게 되고 외도(外道)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서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에 열반에 들어가서 의지하고 머무르며 몸 마음이 바로 이곳으로 부터  흘러나오고 온 세상도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스스로 곰곰이 헤아려 보게 되고 만들어 지는 모든 것이 이곳으로부터 생겨나니 나고 진실로 사라짐 없는 변하지 않는 몸을 이루었다고 그릇되게 이해하게 되어 나고 사라짐 속에 언제나 변함없이 머물러 있다고 잘못 헤아리게 되어서 변함없이 머물러 잇는 것과 나고 사라지는 것이 따로 있다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게 되어 깊은 어리석음에 빠져 있으면서 빼어난 해탈을 이루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변하지

않는 것을 변하는 것이라고 하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자재천(自在天)이 그러하듯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세 번째,열반의 자리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고 여기는 마음을 내세우는 것이라 부르느니라.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몸 마음 뿐 아니라 온 세상이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허망하게 헤아리게 되면,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涅槃)을 등지고 되고 모든 것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여기게 되는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도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아서 만일 앎과 앎의 대상이 본래 하나라고 하게 되어서 온 세상에 풀과 나무도 헤아릴 줄 안다는 견해를 세워서 모두 다 마음이 있으므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며,풀과 나무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사람이 죽어서 온 세상의 풀과 나무로 뒤바뀐다고 하며 다릴 것 없이 모든 것을 다 알아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러한 사람은 모르는 것을 안다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파타와 산니라는 두 외도(外道)가"모든 만물이 깨닫는다"라고 말한 것에 집착하여 되어서 그들과 동무가 되어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菩提)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네 번째,"모든 것을 다 안다"라고 헤아리게 되는 마음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허무맹랑한 소리로 그릇 되이 열반을 이루었다고 하면,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涅槃) 을 등지게 되고 모든 것을 자기가 다 안다고 여기게 되는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생각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된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天上天下唯我獨尊)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 반야와 하나가 되어 그 반야로 모든 것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하다고 헤아리게 되면 모든 바뀌는 것들은 그 쉼없이 바뀌는 것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게 되어 영원히 사라지는 것에 의지하여야 한다고 하고 돌가 머물러 의지할 곳이 있다고 여기어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이러한 사람은 돌아갈 곳이 없음을 돌아갈 곳이라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무상천 속에 있는 모든 수냐타(舜若多*住空神,空性)들 처럼 공(空)을 바라게 되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은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여섯 번째,"하나가 된 마음을 잘못 헤아려 허공(虛空)과 하나 됨을 무심이라고 여기게 되는것'이라 부르느니라.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스스로 공(空)을 이루었다고 망령되이 여기게 되면(果)열반무위성(涅槃無爲性*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을 등지게 되고 단멸(斷滅*영원히 사라지는 것에 의지하여야 한다고 함)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 열반의 자리에서 그 몸이 언제나 머물러있게 되어 마음이 열반의 자리에서 그 몸이 언제나 머물러있게 되어 마음이 열반의 자리와 함께 하게 되면 영원히 죽지 않게 된다고 헤아려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이 사람은 탐내지 아니하여야 할 것을 탐내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아사타(阿斯陀)선인(*부처님께서 태어나섰을 때 관상을 본 仙人)과 그 무리들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게 되어 그들과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知)을 잃어 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일곱 번째,"오래 사는 것을 으뜸이라 여기어 어리석게 고집을 부리어 매달리는 것"이라 부르느니라,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오래 사는 것에만 매달리어 부질없이 헛된 힘만 쓰게 되면,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을 등지게 되고 망연(妄延*허무 맹랑하니 목숨을 늘리는 것이 涅槃이라 여김)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도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마음(命*이 經典에서는 智慧도 여러 가지 漢字를 사용하였거니와 마음도 마음도 다양한 表現을 함)이 온 누리와 하나로 이루어 진 것을 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따져 살펴보게 되어 허망한 모든 것(塵勞)은 다 물리치게 되었으나 아직 마음(命)이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은 물리치지 못하였으니 문득 이 즈음에 칠보를 바꾸어서 연꽃으로 된 궁전을 크게 만들고 그 곳에 앉아 많은 보물과 궁녀들을 모아놓고는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마음속에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이 사람은 전혀 참됨이 없는 것을 참되다고 여기는 집착에 떨어지게 되어 타지(吒枳*天魔)와 가라(*迦羅*天魔) 그들의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菩提)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여덟 번째,"삿된 생각을 비롯하여 허망한 짓을 하게 됨"이라 부르느니라,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마음(命)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을 내어허멍한 생각을 내게 되어,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을 등지게 되고 천마(天魔)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도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마음이(命*아뢰한 식의 완전한 純粹意識)반야(明)와 하나가 되었으나 그 마음 (精*완전한 하나를 이루지 못하였기에 아뢰야식 속의 헤아리게 되는 마음)속에 아직 거칠음이 남아 있어 참된 모습과 하나 되기는 하였으되,마음(精*완전한 하나를 이루지 못하였기에 아뢰야식속의 헤아리게 되는 마음)속의 비롯함에 의하여 갚게 된다는 생각이 남아있어 오직 자신의 앞에 있는 대상과 서로 통하기만을 바랄 뿐 맑고 깨끗한 참다운 도리는 등지게 되나니,

 

이른바 모든 괴로움(苦)은 존재의 움직임(行陰*諸法無我를 깨달아 사라지게 됨)에서 나오는 줄을 알아 기꺼이 멈추어 버리고,열반만을 얻기 위하여 참다운 도리를 닦고 익히나니(*부처님께서 小乘의 四聖諦를 닦아 涅槃에 들고 衆生을 救濟하려 하지 아니하는 것을 나무라시는 말씀)涅槃을 얻고 난 뒤에는 그 곳에 머물러 편히 쉴 뿐이니,다시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이 사람은 정성성문(定性聲聞*小乘의 마지막 果인 阿羅漢果를 반드시 이룰수 있는 무한의 종자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 떨어지게 되어 증상만(增上慢*아직 개달음 얻지 못했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여기는 버릇)을 내는 모든 무문비구(無聞比丘*"無聞이라는 비구가"내가 부처가 되었다"라고 망령된 말을 하여 無聞地獄에 떨어짐)같은 무리들과 어울려 그들의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菩提)를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 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의식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아홉 번째,"마음이 참다움과 하나가 되었지만 그 마음이 오직 열반만을 바라는 것"이라 부르느니라.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오직 열반만을 얻기를 바라여 그것을 구하고는 멈추어 쉬게 되면,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을 등지게 되고 전공(纏空*참다운 空과 하나가 되어서 만족하고 이것마저도 벗어나려는 생각을 내지 않음)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또 이 착한 사람이 모든 행음(行陰)이 실다움이 없어(空)나고 죽는것은 반드시 사라지게 되는 것을 알게 되어 열반에 머무르기는 하나,아직 마음(精)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하나가 되지는 아니하였기에 만일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져서 반야와 하나를 이룸으로 모든 것이 막힘이 없이 하나로 통하게 되거니와,깊고 자세하게 곰곰이 헤아려보게 되어 마음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의 빛이 뿜어져 나와 본바탕과 하나를 이루게 되어 이것을 다함없는 열반(無餘涅槃*아뢰아식이 완전한 純粹意識으로 바뀌는 涅槃과 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의 차이를 지금 設하고 계심)이라고 뜻을 세우게 되어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아니하고 마음속에 빼어난 해탈을 얻었다고 여기게 되면, 이 사람은 정성벽지불(定性僻支佛* 緣覺乘의 마지막 과인 阿羅漢果를 반드시 이룰 수 있는 無漏의 種子를 갖추고 있는 사람)에 떨어지게 되어,

 

마음을 회향(回向*스스로가 쌓은 공덕이나 수행의 힘을 사람들이나 살아있는 생명에게 되갚음)하지 아니하고,모든 연각(緣覺)과 독각(獨覺)들과 어울려 그들의 동무가 되어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보리를 잡지 못하고 헤매이므로 올바른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을 잃어버리게 되느니라. 이를 일러 열 번째,"깨달아 마음이 열반의 자리에 머무르게 됨"이라 부르느니라.

 

막힘이 없이 모든 것을 환히 알게 되는 마지막 자리를 멀리하고 맑고 깨끗함을 끝내 지키어 반야(明)를 얻어 열반에는 이르렀으나 회향 하지 못하여,열반무위성(涅槃無爲城*부처님의 마지막 涅槃)을 등지게 되고 覺圓明不化圓*般若의 빛으로 깨닫게 되어 涅槃은 證得 하였으나 그 곳에 머물러 중생들에게 회향하지 아니하고 홀로 즐김)의 종자로 태어나게 되느니라.

 

아난아,이러한 열 가지의 참선(禪那*진실한 이치를 자세하고 깊게 생각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게 함)을 닦아 익히는 동안에 미쳐서 깨달았다고 하게 되거나 아직 이루어지지 아니 하였는데 크게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하게 되는 것은 이러한 것은 모두 반야의 빛이 드러나게 되어 어리석음이 사라짐(識陰)으로 스스로가 머물러있는 자리가 진실한 열반이라고 여기는 마음 씀씀이가 서로 어울림으로써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되나니,

 

중생들이 어리석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어 스스로 어리석은 줄을 헤아리지 못하여 이렇게 열반이 눈앞에 나타나게 될 즈음에 누구나가 열반을 애타게 사랑하게 되어,먼저 오래도록 익혔던 버릇으로 그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어 스스로 그 곳이 진실한 열반(無餘涅槃)인 것으로만 알고 머물러 쉬게 되어서,

 

마침내는 그 곳이 무여열반(無餘涅槃)의 자리로 여기게 되어 스스로 "첫째가는 빼어난 보리를 깨달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라고 말하게 되면 커다란 망령된 말을 지껄이게 된 것이니 외도(外道)나 삿된 마구니(摩)가 되어서 닦고 익혀서 이루게 된 결실이 다 하게 되면 무간지옥에 떨어지게 되나니,성문(聲問)과 연각(緣覺)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아니하기에 참된 도리를 결코 이룰 수 없게 되느니라.

 

너희들은 마음을 굳게 먹고 여래의 올바른 도리를 지키어,앞으로 내가 열반에 든 뒤에 말법의 세상에 이 법문(法門*참된 道理와 하나가 되는 오직 한 가지 바른 길)을 널리 알리어서 중생들로 하여금 이 올바른 도리를 깨달아 마치게 하고 스스로의 마음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심마로 하여금 움이 터서 스스로 삿된 짓을 하지 못하게 하며,그들의 몸 마음으로 부처님의 지견을 맛보아 편안하게 되어서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고 힘써 구하려들며 삿된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야 하며,처음부터 바른 도리를 이루게 되어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못하게 하여야 하느니라.

 

이러한 법문(法門)은 그 모래알만큼 많은 겁(劫)중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여래(如來)께서도 이것에 의지하여 깨달음을 이루어 첫째가는 빼어난 도리를 얻게 되었나니,만일 식음(識陰)을 다하고 나면 바로 내 앞에 모든 육근(六根)이 하나로 어울려 뜻대로 움직이게 되어서 서로 어울려 진실함과 하나가 되면 그 마음이 스스로 보살마하살의 결코 무너지지 않는 삼매인 금강유정(金剛喩定)에 들게 되어 건혜지(乾慧地*菩薩十地,佛地의 初地)에 오르고 맑고 깨끗한 그 마음(精心)이 반야인 빛과 완전히 하나를 이루어 그 속에서 모습과 성질이 완전하게 바뀌게 되나니,

 

마치 맑고 깨끗한 유리와 같게 되어 안에 보배로 된 달을 머금은 것이 훤히 비추이게 될 뿐만 아니라 십신,십주,십행,십회향,사가행(十信,十住,十行,十廻向,四加行)을 하던 마음조차도 완전히 벗어던지게 되어 보살마하살들이 닦고 익히어 머무르게 된 곳인 무너지지 않는 자리(金剛)인 십지(十地)에 올라 깨달음과 완전한 한 몸을 이루게 되고,그 깨달음이 반야인 빛과 하나가 되며,여래께서 머물러 계신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꾸며진 보배바다에 들어가게 되어서 보리가 부처님나라와 하나를 이루어,이루어졌다는 그 마음조차도 완전히 사라지게 되느니라.

 

이것은 과거의 여래,응공,정변지,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께서 깊고 고요한 마음집중(사마타)속에서 곰곰이 따져 살펴보는(위빠사나)중에,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와 하나를 이룸(覺明)으로 하나하나 미세한 부분까지 파고 들어가 마구니(摩)가 저지르는 일인 줄 알게 되어 물리치게 되었느니라.마구니(摩)들이 저지르는 짓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버리고 삿된 의견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식음(識陰)의 마구니(摩)가 사라지게 되어,천마(天魔)는 부수어지고,대력귀신은 넋이 바져 죽게 되고,도깨비와 귀신들은 두 번다시는 태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며,

 

곧바로 보리에 다다를 때까지 功德이 모자라거나 福力이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고,대열반(大涅槃*無餘涅槃-열반은 八識인 아뢰야식이 맑고 깨끗함으로 하나를 이루게 되는 것이고,無餘涅槃은 열세번째 意識임,지금의 禪門에는 十牛圖 까지 밖에 없음)어리석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일은 더더욱 없을 것이니라.

 

만일 말법 세상에 어리석고 둔한 중생들이 아직 참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說法)은 알지 못하지만 삼매를 닦아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삿된 무리와 하나가 될가 네가 두렵거든 한마음으로 권하여 나의 불벙다라니(佛頂陀羅尼)를 지니어 믿고 따르게 하여라.

 

만일 스스로 외우지 못하거든 베끼어서 참선하는 곳이나 몸에 차거나 지니도록 하면 여러 마구니(摩)가 저지르는 모든 짓이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나니,너는 온 누리에 계신 모든 여래를 마땅히 공경해야 할 것이며,깨달음의 끝까지 닦아 익히어 나아갈 때 마지막까지 아낌없이 베풀고 본보기가 되어야 하느니라.

 

7) 오음(五陰)의 근본(根本)

아난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를 올리고 나서 받들기고 기억하여 잃어버리지 않기를 다짐하고 대중들 가운데서 다시 한 번 부처님께 말하였다."부처님의 말씀에 따르면 오음(五陰)의 모습은 다섯 가지의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시었으나,저희들이 평소에 아주 세밀한 곳까지 올바른 도리를 열어 보이신 여래의 은혜를 입지 못하였나이다.또 이 오음(五陰)은 한꺼번에 사라지나이까? 순서대로 사라지게 되나이까?이러한 오음(五陰)은 무엇으로 시작과 끝을 이루나이까?

 

오직 바라옵건데 여래께서는 거륙한 자비심으로 이 대중들을 위하여 맑고 깨끗한 반야(明)인 마음의 눈이 되어주시고,"이 말법세상에서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미래를 밝게 비춰보는 눈이 되어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참된 마음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이 깨끗한 반야(明)여서 깨달음의 본바탕은 맑고 깨끗함으로 이루어졌느니라.목숨이라는 것이 나고 죽음 속에 머물러 있지도 않으며 눈앞에 드러난 모든 모습 속에 있는 것도 아니어서 모든 것이 다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에 의해서 비롯되는 것이니라. 이러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의 첫째(元)는 그 본바탕이 깨달음이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明)로 이루어진 참다운 마음이지만,그 속에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일어나게 되어 온 누리 생기게 되나니,마치 아즈나다따라가 미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머리가 거울 속에 들어간 걸로 아는 것과 같으니라,

 

망령된 것은 본래 까닭이 없어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 일어남으로 하여 그것을 빌미로 얽어매어져

미치게 되는 것이 본바탕이어서,인연(因緣*비롯된과 얽어 매임)을 알지 못하여 헤매는 사람들은 그것을 자연이라 부르거니와 저 허공(虛空)의 참다운 모습(性)조차도 실은 마음이 허망하여져서 거짓으로 만들어진 것이나,참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되나니,인연이라 하고 자연이라고 하는 것들이 모두 중생들의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마음으로 헤아리게 되어 이루어진 것이니라.

 

아난아,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만들어지는 곳을 참으로 알게 되면 그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인연됨을 바르게 말할 수 있거니와,만일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본래 없는 것이어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의 인연을 말한다 할지라도 본래 없는 것일진대 ,하물면 알지도 못하면서 자연이라고 미루어 짐작해서야 되겠느냐? 그러므로 여래는 너희들에게 오음(五陰)의 밑바탕이 모두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으로 이루어졌다고 환히 드러내 보이는 것이니라.

 

너의 몸이 우선은 부모의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에 비롯하여 생기어 났을지라도 너의 마음속에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 없었다면 즉,스스로 부모의 몸으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마음만으로 너의 목숨이 만들어 지겠느냐? 네가 앞에서 말하기를 마음속에 신맛을 생각하게 되면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고 마음속으로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것과 같이 벼랑이 있지 아니하고,신맛이 나는 물건이 입에 들어오지 아니하였거만 너의 몸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으로 이루어진 것이 분명히 아니라면,신 맛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다고 어찌하여 너의 입안에 침이 고이게 되겠는냐?

그러므로 너의 지금 모습을 일러 "첫 번째,굳고 단단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라고 부르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

 

다시 말하자면 높은 벼랑위에 올라와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음속에 신맛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너로 하여금 입안에 침이 고이게 하고 오금이 저림을 느끼게 하듯이 느낌이 일어나는 까닭으로 말미암아 스스로의 몸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니,너는 지금 다소곳하여 늘어나는 것과 어기어서 줄어드는 두 가지 갈등(*부정과 긍정의 兩極化 된 感情)을 일러 "두 번째,반야(明)가 허망함으로 생기게 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라고 부르게 되느니라.

 

너의 생각으로 말미암아 내가 지금의 몸을 지니게 되었나니,몸이 생각이 뭉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너의 몸은 무엇을 비롯하여 만들어진 것이냐?생각이 시키는 대로 따르게 되어서 가지가지의 모습을 고르게 되나니, 마음속에서 모습을 고를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이 따라서 움직여 주게 되고,깨어있을 때는 마음속이 오직 생각뿐이요,잠들게 되면 모두 꿈이 되느니라.

 

말하자면 너의 상념(想念*想- 의도하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떠오르는 생각,念- 의문 나는 것을 골똘히 기울려 생각함)이 허망한 마음속의 뜻에 의하여 흔들리고 움직이게 되나니,이를 일러"세 번째,거침없고 막힘없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라고 부르느니라, 모양과 성질이 바뀌는 이치가 멈추지 아니하고 돌고 돌아 그윽하게 가리어서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변하게 되나니,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게 되고 기운이 떨어지면서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것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변해가거늘 조금도 깨닫지 못하느니라.

 

아난아,만일 네 몸이 아니라면 어떻게 네 몸이 바뀌게 된 것을 알며,그 몸이 참으로 너라면 어찌 변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더냐? 말하자면 너의 모든 움직임은 생각 생각이 쉬지 않고 굴러가나니,이를 일러 "네 번째,허망한 생각을 감추고 있는 마음(幽隱*煩惱로 가득찬 마음)인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라고 부르느니라.

 

또 네 마음이 반야로 인하여 맑고 깨끗해져서 어느 곳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을 변하지 않고 머무름이라 부르게 되면 몸으로부터 견문각지(見聞覺知)가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며,만일 그 몸이 참으로 진실하다면 허망한 버릇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니,어찌하여 너희들이 예전에 어떤 기이한 물건을 보게 되어 여러 해가 지나도록 기억하고 있는지,있었는지 조차 모르다가 뒤에 문득 다시 예전의 그 기이한 물건을 보게 되면 기억이 또렷이 되살아나서 조금도 잊은 적이 없음을 알게되나니,말하자면 마음이 끝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 맑고 깨끗하여 전혀 헷갈림이 없어서 곰곰이 생각하여 헤아릴 필요가 어찌 있겠느냐?

 

아난아,이와 같이 맑고 깨끗하여 헷갈리지 않는 것이 참다운 모습은 아님을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마치 세차게 흐르는 물이 눈에는 고요하게 보일지라도,흐름이 빨라서 보지 못할 뿐 흐르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만일 생각이 본바탕이 아니라면 어찌하여 생각이 버릇을 따라 움직이게 되며,육근이 네가 아니라면,어찌하여 생각이 버릇을 따라 움직이게 되며,하나가 되어 깨달음을 얻게 되며,저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 사라질 수 있겠는냐?

 

그러므로 네가 지금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동안에 버릇이 물들게 되어서 다시 말하면 마음이 맑고 깨끗하여도 마음속에 그물처럼 얽히고 설킨 모습이 참다운 모습이 아니므로 이를 일러 "다섯 번째,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라 부르느니라.

 

아난아,이러한 다섯 가지의 수음(受陰*般若가 어리석은 느낌에 의해 가림)은 다섯가지의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되느니라. 네가이제 비롯함으로 만들어지는 세상의 얕고 깊음을 알고자 한다면(汝今欲知因界淺深)물건의 본바탕 색(色)과 공(空)은 색음(色陰)의 시작과 끝이요,닿음(觸)과 떨어짐(離)은 수음(受陰)의 시작과 끝이요,새김(記)과 잃어버림(忘)은 상음(想陰)의 시작과 끝이요,사라짐(滅)과 나옴(生)은 행음(行陰)의 시작과 끝이요,스스로의 맑고 깨끗함(*自性,淸淨心)이 맑고 깨끗한 참다운 모습과 하나가 되는 것을 식음(識陰)의 시작과 끝이라 하느니라.

 

이러한 오음은 서로서로 겹쳐서 흐려짐으로 점점 어리석어지게 됨으로 인하여 생기게 된 것이니,태어남은 헤아려 살펴보는 마음에 의하여 있게 되고,사람짐이란 물건의 본바탕이 덜어지는 것이니라.도리라는 것은 단박에 깨닫는 것이고,완전한 깨달음이란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니,허물을 지우는 것은 단박에 덜어지는 것이 아니어서 차례대로 조금씩 닳아지는 것이니라.내가 이미 너에게 겁파라천(*야자수 꽃잎으로 만든 수건)으로 만든 수건으로 매듭을 묶어 보이었거늘,무엇이 분명하지 않아서 다시 묻는 것이더냐?

 

너는 앞으로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의 밑바탕을 마음으로써 뚜렷이 깨달아야하며 앞으로 다가오는 말법의 세상에 있는 모든 수행자 들에게 널리 전하여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헤아려 봄으로 스스로 깊이 싫은 마음을 내개 하고 열반이 있음을 분명히 알게 하여 삼계(三界)를 사랑하지 않게 하여야 하느니라.

 

유통분(流通分)

"아난아,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온 세상의 허공(虛空)이 가득 차도록 칠보로 된 보물을 쌓아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께 받들고 따르면서 공양을 올리되 마음에 전혀 헤아림이 없다면,이 사람이 이렇게 부처님께 보시한 인연으로 얼마나 많은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생각 하느냐?"아난이 말하였다."허공(虛空)이 다함이 없고 보물도 끝이 없나이다.예적에 어떤 중생이 있어 그 중생이 있어 그 중생이 부처님께 동전 일곱 닢을 보시하고는 죽어서 전륜성왕이 된 것과 같이 하물며 지금 허공(虛空)에 가득 찰뿐만 아니라 부처님 나라까지 가득한 보물을 보시하였사온데,겁이 다하도록 헤아려 살펴볼지라도 헤아릴 수 없을진대,이 복이 어떻게 끝이 있겠나이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시었다."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말씀은 전혀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없느니라,만일 어떤 사람이 있어 몸으로 네 가지 커다란 죄를 짓고 열 가지의 무거운 죄를 짓게 되어서 순식간에 이쪽저쪽에 있는 모든 아비지옥을 골고루 다니고 모든 무간지옥까지도 낱낱이 겪게 되어야 하되 스스로 오로지 한 생각으로 이 법문(法門*참된 道理와 하나가 되는 오직 하나 뿐인 바른 문)을 말법 세상에 머물러 있는 아직도 부처님의 올바른 도리를 배우지 못함(未學)중생들에게 널리 베풀게 되면 이 사람의 죄로 인한 모든 걸림이 한 생각에 모두 사라지게 될 뿐만 아니라,지옥에서 받아야할 온갖 괴로움이 바뀌게 되어 극락에 이르게 ,이 사람이 얻은 복이 저 앞에 보물로써 보시한 사람보다 백배,천배,천 만억 배가 될 뿐만 아니라,산수(算數)와 비유(譬喩)로도 미치지 못하느니라.

 

아난아,만일 어떤 중생이 있어 스스로 이 경전을 외우거나 이 주문을 지니고 따르게 되면,그 공덕이 내가 아무리 겁이 끝나도록 말을 하더라도 그 공덕을 다 말할 수 없으며 나의 가르침과 말을 따르고 의지 하게 되면,곧바로 보리를 얻게 되어서 다시는 마구니(魔)의 장난이 없게 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전(經典)을 말씀하시길 마치시니,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의 사부대중과 모든 세간의 천인,아수라 뿐 만 아니라 다른 곳에 계시던 보살,이승,성선동자와 이제 막 발심한 대력귀신들 까지도  모두 커다란 기쁨과 즐거움을 내어 부처님께 정례(頂禮)를 올리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2021년 06월 07일

                                                                                                능엄경 컴사 마침  보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