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능엄경(楞嚴經)제 4 권

추운보광 박 근 석 2020. 7. 21.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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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계(世界)와 중생(衆生)이 생기던 일

이때에 부루나가 대중 가운데서 일어나 가사를 오른쪽 어깨에 벗어메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뒤 공경(恭敬)하여 부처님께 말하였다."크나큰 위엄과 덕을 지니신 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이시여(世尊)! 중생들이 착함을 이루도록 여래의 첫 째 가는 올바른 도리를 알기 쉽게 자세히 말씀해 주셨나이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께서는 언제나 "사람 중에 네가 설법제일"이라고 추천 하셨으나.이제 부처님의이루 말할 수 없는 자세(微妙)와 참다운 도리의 음성을 들으니 마치 귀머거리가 백 걸음 밖에서 모기의 소리를 듣는 것과 같이 까막득하여서 본디 본 적도 없거니와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비록 분명하게 밝혀 베풀어 주시어 저로 하여금 의혹(疑惑)을 덜게 하셨으나 아직도 이 도리를 자세히 알지 못하여 의혹이 없는 자리(無疑惑地)끝까지 가지 못 했나이다. 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하신 분(世尊)이시여! 아난과 이 무리들이 비록 깨우침을 열었다고는 하나 배우고 익힌 번뇌(漏)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거니와,이 모임에서 온갖 번뇌(漏)가 다해서 번뇌 없는 자리(無漏地)에 오른 저희들도 지금 여래의 참다운 도리의 음성을 듣고는 오히려 가르침에 의문을 드리우게 되었나이다. 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하신 분(世尊)이시여!

만일 세간의 온갖 머무는 본바탕(根),경계(塵),가림(陰),곳(處),세계 등이 다 여래장(여래장)이어서 맑고 깨끗하며 본디 그러하다(湛然)면 어찌하여 느닷없이 산(山),하(河),대지(大地),라는 존재의 모습이 생긴 것이며 순서에 의해 옮기고 흘러 다니다가 마치면 다시 처음이 되나이까? 또 여래께서 말씀하시길"땅(地),물(水),불(火),바람(風),의 본바탕(性)이 통하여 막히는 데가 없어서(圓融)온 세상 (法界)에 두루 하여 맑은 그 모습(湛然)으로 언제나 머무른다"하시었나이다.

 

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이시여! 만일 땅(地)의 바탕(性)이 가득 차있다면 어떻게 물(水)을 받아들이며 물(水)의 두루 가득하다면 불(火)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며 어떻게  물과 불의 확실한 두 성질이 어울리고 허공(虛空)에 가득 해서는 서로를 업신여기지 않나이까? 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이시여! 땅의 참다운 모습(性)은 거치적거리어 가로 막는 것이고 공(空)의 참다운 모습(性)은 막힘이 없어 통하는 것 이온데 어떻게 둘이 함께 온 세상에(法界)에 가득하나이까? 저는 이 도리가 돌아갈 마땅한 곳을 알지 못하오니 바라건데 여래께서는 크나큰 자비 베푸시어 저의 갈팡질팡 헤매는 이 마음 열어 주소서," 대중들과 함께 이렇게 말하고는 온 몸을 땅에 던져 여래의 첫째가는 빼어난 자비의 가르침만을 우러러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하신 분(世尊)께서는 부루나와 모임 중에 번뇌(漏)가 다해 더 배울 것이 없는(無學)아라한들에게 말씀하시었다."여래가 오늘 이 모임을 위하여 뛰어난 도리중 중에 제일 으뜸가는 도리의 본바탕(性)을 너희무리 중에 정성성문(定性聲聞*小乘의 마지막 果인 阿羅漢果를 반드시 이룰 수 있는 無漏의 種子를 갖추고 잇는 사람)과 온갖 이공(二空*我空과法空)을 얻지 못한 이들과 대승(大乘)으로 회향(回向*스스로가 쌓은 공덕이나 수행을 힘을 사람들이나 살있는 생명에게 되갚음)한 아라한들로 하여금 일승(一乘)

의 니르바나 자리(寂滅場地)이며 참된 적멸도량(寂滅道場)인 바른 수행에 들어가는 곳을 넓게 펼쳐 보일 터이니 너희들은 지금 자세히 들어라,너희들을 위하여 말하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부루나야,네가 말하기를 "맑고 깨끗하며 본디 그렇다면(本緣)어찌하여 느닷없이 산(山),하(河),대지(大地)가 생긴 것인가"하거니와 여래가 참다운 도리의 말씀을 펼 때"본 바탕인 깨달음(性覺)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妙明)로 이루어졌고,본디 깨달음(覺)은 반야(明*거룩한 지혜인 반야는 안으로는 슬기,밖으로는 빛으로 표현됨)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나느니라,라고 하는 것을 듣지 못했느냐?"부루나가 말하였다."그러하옵니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이시여!부처님께서 그러한 도리를 말씀하시어 베풀어 주심을 언제나 들었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 하셨다."네가 반야(覺明)가 빛을 본바탕(성명)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면,반야가 아닌(不明)깨달음(覺) 그 자체(自體)를 깨달음(覺)이라 불러야 하느냐

반야에 의한 깨달음(明覺*菩提,個人性)을 깨달음(覺)이라 불러야 하느냐? "만일 이 반야가 아닌  것(不明)을 깨달음(覺)이라 부른다면 다시 말해 반야(明)라는 것이 없다고 하겠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만일 반야(明)가 없는 것을 깨달음 (覺)이라 한다면 깨달음은 반야(明)가 없는 것이다.라고 해야 하거니와 일정한 장소가 있다면 깨달음(각)이 아니요,일정한 자리가 없으면 반야(明)도 있을 수 없으니,반야(明)가 없다면 그 깨달음(覺)은 맑고 깨긋한 반야의 본바탕(明性)도 아니니라.본바탕인 깨달음(性覺)은 반야(明)이건만,반야에 의한 깨달음(明覺*菩提,個人性)은 거짓되어 미덥지 못한 것이니라.

 

깨달음이 반야(明)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마는 반야(明)를 비롯하여서 일정한 자리를 잡게 되고 자리가 거짓으로 이루어 졌으므로,너의 몸 마음(妄能)이 생기게 되고 허공(虛空一同*참다운모습-性의 同質)과 경계(境界-異)가 없는(全體性)그 속(眞空)에서 사나운 불꽃처럼 수많은 모습(境界*時間과 空間 속에 일어나는 여러 現象)이 이루어지고 모습(境界)이 또 다른 모습(境界)이라는 일정한 자리를 만들므로 모습(境界)을 비롯하여 텅 빔(虛空一同-眞虛空인 아닌 空間)을 세우고,텅 빔(空間)과 모습(境界)을 환하게 드러내어서 이를 비롯하여 텅 빔(虛空)도 없고 모습(境界)도 없음을 세우느니라.이와 같이 어지럽고 어수선한 것에 서로 기대어서 고단함이 생기고 고단함이 오래되어 경계(境界*時間과 空間 속에 일어나는 現象)가 드러나게 되고 스스로의 모습이 어지럽고 흐려진 모습을 띠나니,이로 말미암아 고단한 현상(現象)들과 번뇌가 일어나는 것이니라.일으켜 세워서는 세계를 이루고 고요함으로 허공(虛空)을 이루나니 허공(虛空*現象界의空間)은 참된 허공(虛空)과 그 본바탕(性)이 같고 세계는 다른 것이어서,저 같고 다름이 없는 것을 참된 인연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有爲法)이라 하느니라.깨달음인 반야(明)와 공(空)의 어리석음(味)이 서로 기대어서 흔들리게 되었고(想念이 만들어짐)그리하여 풍륜(風輪*네 번째의 차크라-想念)이 세계를 맡아 다스리게 된 것이니라.

 

공(空)을 비롯하여 흔들림과 움직임이 생기었고 반야(明)가 겹쳐져서 애(礙*반야-明와 어리석음-味이 서로 서끼어서 흐려짐-礙)가 되나니 저 금보(金寶*金寶-微塵을 7배한 것)란 반야에 의한 깨달음(明覺*보리,개인성)을 일곱 겹으로 쌓아 뭉친 것으로써 금륜(金輪*金의 에너지장)이 있음으로 국토(金性*순수한 본바탕)를 보호 하느니라.보리(明覺*菩提-個人性)를 단단히 뭉쳐서 금보(金寶*참다운모습)가 되고 반야(明)가 흔들려서는 바람(風*想念)이 생기는 것이며,바람(風)과 금(金*마음)이 서로 문질러져서는 불(火光*嗔心)이 있게되는 이러함이 본바탕(性)의 변화에 의해 이루어 진 것이니라.보배의 밝음에 의해 광택이 생기고 불은 김을 위로 올림으로 해서 수륜(水輪*金塵을 7배한 것을 水-執着,貪心)이 있게 되어 온 누리를 머금는 것이니라.불은 올라가고 물은 내려오며 서로 엇갈리면서 굳게 세우고 드러내는데 축축한 것은 큰 바다를 이루고 마른 것은 대륙을 이루나니,이러한 도리로 저 큰 바다가운데서 언제나 불길이 일어나고 대륙가운데로는 언제나 강과 하천의 물이 흐르는 것이니라.물의 내뻗는 힘찬 기운이 불보다 약하면 엉기어 뭉쳐서 높은 산(水震을 7배한 것을 兎毛塵-흙)이 되는 것이니 그러므로 산의 돌이 부딪히면 불꽃이 일고 녹으면 물이 되는 것이니라.흙의 내뻗는 힘찬 기운이 물보다 약하면 싹이 터서 초목(草木 兎毛塵을 7배한 것을 羊毛塵-草木의塵)이 되나니,나무와 덤불이 타면 흙이 되고 쥐어짜면 물이 되느니라.

 

헛된 것이 엇갈리면서 서로 번갈아 종자가 생기도록 들춰내나니,이러한 인연으로 세계가 이어지는 것이니라.또 부루냐야,반야(明)가 거짓되어 미덥지 못함이란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보리(明覺*菩提,個人性)가 허물을 이루는 것이니,거짓되어 미덥지 못함이 일정한 자리가 이미 정해졌으면(境界)반야(明)가 도리(道理)를 뛰어넘지 못하느니라.이런한 인연으로 들음(聽)은 소리에서 나오지 못하고 헤아려 살펴보는 것(見)은 모습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니라.모습,향기,맛,닿음(四微)과 육망(六妄*眼耳鼻舌身意)이 서로 엇갈리면서 온 세상(法界*四微와 六塵이 합해져서 완성이 됨.十)이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이리하여 보고 듣고 깨달아 아는 것(見聞覺知)이 나누어 펼쳐지나니 같은 업(業)끼리 서로 엃히어서 서로 어울려 뭉쳤다 떨어졌다 하는 것이니라.반야(明)를 헤아려 살펴봄(見)으로 모습(色*眼耳鼻舌意의 五根과 色聲香味觸의 五境과 허공속의 빛-合11色=物質의 總稱)이 드러나게 되었고,헤아려 살펴보는 반야(明)로 생각(想)이 만들어져서 달리 보이면 미움이 일어나고,생각(想)이 같으면 사랑이 이뤄지고,사랑이 흘러서 씨앗이 되고,생각(想)을 받아들여 아이를 베게 되고,음양(陰陽)이 서로 합하여 후손이 생길적에 같은 업(業)의 무리만 빨아들이므로 이런 인연으로 깔라람(Kalalam 胎안에서 생긴지 7일 까지의 상태)과 알부담(arbudam 태안에서 생긴지 14일까지의 상태)등이 생기는 것이니라.태(胎),란(卵),습(濕),화(火)가 그 알맞게 맞춰진 자리를 따르는데 란(卵)은 생각(想)에 의해 생기는 것이고,태(胎)는 정(精)에 비롯하여 있고.습(濕)은 느낌(感)의 뭉침에 의한 것이고,화(化)는 따로 떨어짐으로 해서 행동하는 것이니라.

 

정(情),생각(想),뭉침(合),따로 떨어짐(離)이 서로 변이(變異*전혀 다른 성질로 바뀜)하되 업(業)을 받는자리가 있으므로 공중을 날고 물속에 잠기면서 이러한 인연으로 중생들이 이어지는 것이니라.부루나야,생각과 사랑이 함께 맺히어서 사랑을 익숙하게 떨쳐버리지 못하여서온갖 세간의 부모와 자손들이 서로 생기어서끊어짐이 없나니,이러한 것들에 의해 탐욕(貪慾)의 바탕이 되는 것이니라. 사랑함으로써 탐(貪)이 함께 늘어나서 탐(貪)을 익숙하게 멈추지 못하므로 온갖 세간의 태생(胎生),난생(卵生),습생(濕生),화생(化生),이 힘의 강

약을 따라서 번걸아 서로 삼키고,먹고 하나니 이러한 것들에 의해 죽이는 탐욕(貪慾)의 바탕이 되는 것이니라.사람이 양을 먹음으로써 양이 죽어서 사람이 되고 사람은 죽어 양이 되고 이와 같이 열 종류의 생명들이 죽고,죽고 나고 나면서 번갈아 와서 서로 먹되 악한 업(業)으로 영원토록 함께 생기나니 이러한 것들에 의해 도둑질을 탐(貪)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니라.너는 나의 목숨을 짊어지고 나는 너의 빚을 갚아서 이러한 인연으로 백,천겁(劫)을 지내면서 언제나 삶과 죽음속에 있느니라.너는 나의 마음을 사랑하고 나는 너의 얼굴을 사랑하여 이러한 인연으로 백, 천겁(劫)을 지내면서 언제나 얽매어 묶여 있느니라.오직 살생(殺生)과 도둑질(偸盜)그리고 음탕(淫蕩)함 이 세 가지가 본바탕이 되는 것이니 이러한 인연으로써 업(業)과 결과가 이어지는 것이니라.

 

부루나야,이와 같은 세 가지의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을 참이라고 여기게 되어 이어짐은,모두 반야(覺明*般若)가 분명하고 똑똑하게 아는 분별하는 본바탕(지성)에 비롯하여 모습(相)을 드러내어서는 "어리석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헤아려 살피게 되어(望見)산하대지(山河大地)가 생기었으며 인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온갖 지니고 있는 모습(有爲相)들이 순서대로 변하고 흐르는 것이며 이 "어리석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헤아려 살피게 됨(望見)을 비롯하여 마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라."부루나가 말하였다."만일 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깨달음(妙覺*本覺)에서 나온 본디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보리(明覺*菩提,個人性)가 여래의 마음과 더불어 늘어나지도 줄지도 않는데 느닷없이 산하대지(山河大地)의 인연에 의해 이루어지는 온갖 지니고 있는  모습(有爲法)들이 생겼다면,이제 여래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참다운 공(眞空)인 보리(明覺*菩提,個人性)를 얻으셨으니,산하대지(山河大地)의 인연에 의해 이루어지는(有爲)되풀이 되는 짓(習漏)이 언제 다시 생기겠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부루나야,마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어떤 마을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남쪽을 북쪽인줄 안다면 이 헤맴(迷)이 헤매는 것(迷)에 비롯하여 있는 것이냐 깨달음(悟)을 비롯하여 있는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였다."이와 같이 길을 잃어 헤매는 사람은 헤매는 것에 비롯하지도 않았거니와 깨달음에 비롯하지도 않았나이다.왜냐하면 헤매는 것(迷)이 본디 머무르는 곳(本)이 없는데 어떻게 갈피를 못 잡는 것(迷)에 비롯되었다 하며,깨달음(悟)에서는 헤매는 것(迷)이 생기지 아니 하는지라,어떻게 깨달음(悟)에서 비롯되어 생겼다 하오리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저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이 한참 헤매고 있을 때,갑자기 길을 잘아는 사람이 있어 가리켜주어 깨닫게 한다면,부루나야,어떻게 생각하느냐? 이 사람이 비록 길을 잃어 헤매었으나 저 마을에서 다시 헤매는 것이 생기겠느냐?"아니옵니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이시여.""부루나야,온 누리의 여래도 또한 그러 하느니라. 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迷)은 머무르는 곳(本)이 없어서 그 본바탕(性)이 마침내는 텅 비어(空)있느니라.예전에는 본디 헤매지 않다가 헤매게 되면,깨달음(覺)이 갈피를 못잡는 것처럼 보이지만,헤매는 것(迷)을 깨달아 헤맴(迷)이 사라지면 깨달음(覺)에서는 헤맴(迷)이 생기지 아니 하느니라. .또 눈이 침침한 사람이 허공(虛空)가운데서 거짓으로 만들어진 꽃을 보다가 눈병이 사라지면 거짓으로 만들어진 꽃이 공중에서 느닷없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 있어 저 허공(虛空)의 거짓으로 만들어진 꽃이 사라진 자리에서 허공(虛空)의 거짓으로 만들어진 꽃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린다면 ,네가 살펴보아라.이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냐 슬기로운 것이냐?"

 

부루나가 말하였다."허공(虛空)에는 애초에 꽃이 없었거늘,거짓되어 미덥지 못하게 생기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듯이 꽃이 허공(虛空)에서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이 이미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이온즉 다시 허공(虛空)에 꽃이 나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은 참으로 미친 바보이온데,어찌하여 다시 이런 미친 사람을 어리석다 슬기롭다 부르겠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네 견해(見解)가 그와 같다면 어찌하여 제불여래(諸佛如來)의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깨달음(妙覺)의 반야(明)의 자리인 참다운 공(眞空*비어서 空이 아니라 완전한 처음자리라서 眞空)에서 어떻게 다시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나온다고 하는 것이냐? 또 금광석(金鑛石)속에 순금이 섞여있는 것과 같이 그 금(金)이 한번 순금이 되면 다시는 금광석(金鑛石)으로 안 되듯이,나무가 재가 되면 다시는 나무가 안 되는 것과 같이 제불여래(諸佛如來)의 보리와 열반도 이와 같으니라.부루나야,또 네가 "땅,물,불,바람(地,水,火,風)의 본디 바탕(性)이 통하여 막히는 데가 없다.(圓融)하여 온 세상(法界)에 두루 하였다면 물과 불의 밑바탕(性品)이 서로 범하여 사라지지 않겠느냐? 의심하여 물었고 또 허공(虛空)과 대지(大地)가 온 세상(法界)에 가득 찼다면 서로 받아들여 어울리지 못하리라.'하였느니라.부루나야,비유하면 허공(虛空)의 모습(體)이 여러 모습은 아니지마는 저 온갖 모습을 떨치어 나타내는 것(發揮)을 물리치는 아니 하느니라.

 

왜냐하면 부루나야,저 크나큰 허공(虛空)이 해가 비치면 맑고,구름이 끼면 어둡고,바람에 흔들리면 움직이고,맑게 개이면 선명하고,기운이 엉기면 흐려지고,흙이 쌓이면 흙비가 내리고,물이 맑으면 비치느니라.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와 같이 온갖 방향의 인연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有爲相)이 저것들(*해,구름,바람,맑게개임,기운,흙,물)에 비롯하여 생기는 것이냐,허공(虛空)에 있는 것이냐? 만일 저것들에 비롯하여 생기는 것이라면 부루나야,장차 해가 비칠때에 그 동안에는 해의 밝음으로 온 누리가 같은 햇빛으로 이루어 질것 인데 어찌하여 공중에서 다시 둥근 해를 보게 되는 것이냐? 만일 이것이 공(空)의 밝음이라면 스스로 비추일 것인데 어찌하여 밤중에 그름과 안개가 끼었을 때는 빛나는 것이 생기지 않는 것이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느니라.이 밝음은 해에 의해서도 아니요,공(空)에 의해서도 아니지만 공(空)과 해와 다르지도 아니하느니라.모습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거짓되어 미덥지 못하여 따질 것도 없지마는,마치 공중의 꽃에서 과일이 맺히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으니,어떻게 서로 범하여 사라지지 않는 도리를 따져서 비난 하는 것이냐? 참다운 모습(性)을 자세히 살펴보면 본래 진실하여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妙覺明心*般若)가 앞서 물도,불도 아니라 했거니와 어찌하여 서로 받아들이지 아니 한다고 묻는 것이냐? 참으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妙)반야(覺明*般若)도 이와 같아서 네가 공(空*眞空)에서 원하게 드러내면(發明) 공(虛空)이 나타나고,공(眞空)에서 땅,물,불,바람(地水火風)을 훤하게 드러내면 각각 낱나는 것이며,만일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니라.어떠한 것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냐?

 

부루나야, 어떤한 것이 한꺼번에 나타나는 것이냐? 부루나야,어떤 물속에 해의 그림자가 나타나거든 두 사람을 따라가니 하나의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가서 어느 것을 기준할 것이 없으니' 이 해가 본디 하나인데 어찌하여 따로 가느냐?'"따로 가는 해가 이미 둘인데 어찌하여 하나로 나타나는 것이냐?' 하고 묻는다면 분명히 거짓되고 미덥지 못하여서 의지하거나 근거할 곳이 없느니라.부루나야,네가 여래장(如來藏)중에서 모습(色*物質이 아닌 眞色)과 텅 빔(空)에 마음을 기울였다.놓았다.하므로 해서 여래장(如來藏도 모습(色)과 텅 빔(空)이 되어서는 온 세상(法戒)에 두루 하나니,이리하여 바람은 움직이고,공(空)은 맑고,해는 밝으며,구름은 어두워서, 중생들은 그 가운데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다 깨달음(覺)을 등지고 경계(境界*드러난 모습)에 어울려서는 각 경계(境界*특히 사진-色,聲,香,味,觸)의 고단함(勞*비유하면 眞空의꽃)을 들춰내서는 이 세간(世間)의 모습을 이루느니라.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明)이므로 사라지지도 나지도 않으면서 여래장(如來藏)과 하나로 어울리기에 여래장(如來藏)은 오직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妙覺明*般若)이어서 뚜렷하게 온세상(法界)을 비추이나니,이러므로 그 가운데서 하나(一*全體)가 헤아릴 수 없게(無量)되고,헤아릴 수 없음(無量)이 하나가 되며,작음*(小-眞空)이 큼(大-虛空)을 드러내고,큰 가운데서 작음이 나타나나니,

 

움직임 없는(不動*眞空이라서 중심이고 그래서 不動) 도량(道場)에서 온 누리 끝까지,몸에 온 누리의 헤아릴 수 없는 허공(虛空)을 머금고는 하나의 털 끄트머리에다 부처님 도량((寶王刹)을 드러내시어 미진(微塵*빛-眞色)속에 앉으셔서 한량없는 올바른 도리 (法)를 전하시나니,경계(境界*色聲香味觸에 의해 일어나는모든 현상)가 사라져서 깨달음(覺)과 하나로 어울리므로,이루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와 하나를 이루는 마음의 본바탕(妙覺明性)인 참으로 본디 결코 변하지 않는 참다운 모습(眞如)이 들어나게 되느니라. 여래장(如來藏)이 본바탕인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나 두루 통하는 마음은 마음(心)도 아니고,공(空)도 아니고,땅(地)도 아니고,물(水)도 아니고,바람(風)도 아니고,불(火)도 아니고,눈(眼) 아니고,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도 아니고 모습(色)도 아니고,소리(聲),향기(香),맛(味),닿음(觸),이치(法),도 아니며 헤아려 아는 세계(의식계)도 아니고,이와 같이 헤아려 알 수 없는 세계(無意識界)도 아니니라. 밝음과 어둠도 아니고, 밝음과 어둠이 다한 것도 아니고,그리고 또 늙음(老)도 아니고,죽음(死)도 아니고,늙고 죽음(老死)이 다한 것도 아니고,괴로움(苦), 아니고,모아놓음(集)도 아니고 사라짐(滅)도 아니고,도리(道)도 아니고 슬기(智)도 아니고,얻음(得)도 아니니라.

 

보시(報施)도 아니고,지계(持戒)도 아니고,인욕(忍辱)도 아니고,정진(精進)도 아니고,선정(禪定)도 아니고,반야도 아니고,저 언덕에 다다름(到彼岸)도 아니며 이와 같아서 여래도 아니고,응공(應供)도 아니고,정변지(正徧知)도 아니고,대열반(大涅槃)도 아니고,항상 함도 아니고,즐거움(樂)도 아니고,나(我)도 아니고,깨끗함(淨)도 아니니라.그러므로 사바세계(娑婆世界)와 출세(出世*佛道)가 모두 아니므로 여래장(如來藏)의 으뜸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妙) 환한 마음이 곧 마음(心)이요,곧 공(空)이요,곧 땅(地)요,곧 물(水)요,곧 불(火)요,곧 바람(風)이요,곧 눈(眼)이요,곧 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이며,곧 모습(色)이요,곧 솔(聲),향기(香),맛(味),닿음(촉),이치(法)이며,곧 헤아려 아는 세계(의식계)요,이와 같이 헤아려 알 수 없는 세계(無意識界)니라.곧 밝음과 어둠이요,밝음과 어둠이 다함이며,그리고 곧 늙음(老)요,곧 죽음(老死),이 다함이요,곧 괴로움(苦)이요,곧 모아놓음(集)이요,곧 사라짐(滅)이요,곧 도리(道)요,곧 슬기(智)요,곧 얻음(得)이니라. 곧 보시(布施)요,곧 지계(持戒)요, 곧 인욕(忍辱)이요,곧 정진(精進)이요,,곧 선정(禪定)이요,곧 반야요,곧 저 언덕에 다다름(到彼岸)이며 이와 같아서 곧 여래요,곧 응공(應供)이요,곧 정변지(正徧知)요,곧 대열반(大涅槃)이요,곧 항상(恒常)이요,곧 즐거움(樂)이요,곧 나(我)요,깨끗함(淨)이니라.이렇게 모든 것이 사바세계(娑婆世界)와 불도(佛道)이므로 곧 여래장(如來藏)인 으뜸가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인 마음의 본바탕(妙明心元)이 옳고 그름을 떠났으며,

 

이것은 옳고 이것은 그른 것이 아니므로,사바세계(娑婆世界)의 욕,색,무색계의 중생들이나 출세간(出世間)의 성문(聲聞),연각(緣覺)이 그들의 헤아리는 마음으로 여래의 첫째가는 보리(無上菩提)를 어떻게 가늠 할 것이며,부처님의 보고 아는 지혜(知見)를 어떻게 세상의 언어로 표현 할 것이냐? 비유하면 거문고와 가야금,공후,비파 등이비록 이루 말할 수 없는 소리를 내지마는 만일 그것을 다루는 뛰어난 악공이 없다면 마침내는 그 소리를 드러낼 수 없는 것과 같이,너를 비롯한 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부처님의 깨달음의 바탕(寶覺)인 참 마음(自性-淸淨心)이 너희들 마음속에 골고루 가득 차있건마는,마치 내가 손가락을 어루만지면 해인(海印*부처님 三昧,일체의 법을 손가락 하나 속에 담아 보이심)의 빛 무리가 드러나고 너는 잠깐만 마음을 움직여도 번뇌가 먼저 일어나나니,게을러서 첫째가는 도리(無上道)를 구하지 않고,소승(小乘)에 사랑하는 마음을 내어 조금 얻고 만족하기 때문이니라."부루나가 말하였다."저나 여래께서나 부처님의 깨달음의 바탕(寶覺)인 반야로 가득한 (圓明)진실로 이루 말할 수 없이 깨끗한 마음(自性淸淨心)이 나뉨 없이(無二)두루 가득하지마는,저는 오랜 옛적부터 끝도 없는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만나서 오래도록 윤회하는 데 머물렀으므로,마치 이제 성스러운 탈것(聖乗)을 얻었으나 아직 마지막 도달할 곳 (究竟)에 이르지 못한 것과 같나이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께서는 모든 헛된 것들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시어 언제나 홀로 이루 말할 수 없이 진실하시나이다.

 

감히 여래께 묻겠나이다.모든 중생들은 무엇을 비록하여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이 잇는 것이며,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妙明)를 스스로 가리고 이 고통바다에 빠져서는 허우적대나이까? 부처님께서 부루나에게 말씀하셨다."네가 비록 의심은 제거 하였으나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하였으니 내가 세간(世間)에 드러난 온갖 일들로써 지금 너에게 묻겠노라.네가 어찌 듣지 아니하였겠느냐.?왕사성에 사는야즈나다따라는 사람이 새벽에 느닷없이 거울에 얼굴을 비춰보다 거울 속의 머리로는 얼굴을 볼 수 있는데 자기 머리로는 얼굴을 볼 수 없음을 꾸짓고 성을 내고는 모습 없는 도깨비가 되었다고 미쳐서 달아났다.하니 어떻게 생각 하느냐? 이 사람이 무엇을 비롯하여 아무 까닭 없이 미쳐서 달아난 것이냐?"부루나가 말하였다."이 사람은 마음이 미친 것이고 또 다른 까닭은 없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깨달음

(妙覺)은 반야(明)로 가득하고,처음부터 가득한 반야는 이루 말할 수 없어서 이미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이라고 칭하였는데 무슨 비롯함이 있겠는냐? 만일 비롯함이 있다면 어찌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이라 부르겠느냐? 스스로 온갖 어이없고 미덥지 못한 생각을 펼치고 변화 시키는 것이 비롯함이 되어 갈판질팡 헤매는 것이 쌓여서 마음이 흐르져 흘린 것이 셀 수 없는 겁(劫)을 지남으로써 부처님께서 훤하게 드러내주셔도 돌이키지 못하느니라.

 

이와 같이 갈팡질팡 헤매는 것(迷)은 바로 갈팡질팡 헤매는 것(迷)에 비롯한 것 때문에 스스로 있는 것이므로,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迷)이 비롯함이 없는 것을 헤아려 알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오히려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생길 수 없거늘 어찌 사라지게 노력 할 필요가 있겠느냐? 보리(菩提)를 얻음은 잠에서 깬 사람이 꿈속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과  같아서,마음이야 깨끗하고 맑지마는 어떤 인연으로 꿈속의 물건을 취할 수 있겠느냐? 하물며 비롯함이 없어서 처음부터 없는 것인데,마치 저 성중(城中)의 야즈나다따라처럼 스스로의 머리가 무섭다고 느닷없이 미쳐서 달아난 것이 어찌 인연때문이라 하겠느냐?머리를 쉬게 한다는 것은 광증(狂症)이 사라지지 않는 한 밖에서 얻을 수 도 없거니와 또한 어떻게 잃어버릴 수 있겠는냐?네가 다만 세간의 업(業)과 응보(因果應報)와 중생들의 세 가지 이어짐(相續*慾,色,無色界의 인연인 貪-盜,嗔-殺,癡-淫)을 분별하지 아니하면 세 가지 얽매임(三緣*盜,殺,淫)이 끊어지므로 세 가지 비롯함(因*貪,嗔,癡)이 생기지 아니하여 네 마음속에 있는 야즈나다따라와 같은 미친 바탕(狂性)이 스스로 쉬게 되고,쉬기만 하면 빼어난 보리(菩提)의 깨끗하고 반야인 이 마음이 본디 온 세상(法界)에 가득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얻을게 아니거늘,어찌하여 네 안에서 살과 뼈를 발라서라도 가장 중요한 곳을 힘써 구하고 닦아 증명하려 들지 않는 것이냐?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있어 자신의 옷 속에 여의주(如意珠)가 매어져 있는데도 스스로 깨우쳐 알지 못하여서,가난하여 생활이 몹시 어렵지만 일찍이 여의주(如意珠)는 잃어버린 것이 아니니라.문득 슬기로운 사람이 있어 그 구슬이 있는 곳을 가리켜주면 원하던 바라 마음을 내어 큰 부자를 이루리니,여의주(如意珠)를 밖에서 얻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니라.

 

17, 인연(因緣)이란 의심(疑心)을 덜게 하다

그때의 아난이 대중들 가운데에 있다가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를 올리고 일어나서 말하였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살생과 도둑질 그리고 음탕한 짓의 세 가지 얽어매어진 것( 殺,盜,淫)이 끊어지므로 세 가지 비롯함(因*貪,嗔,癡)이 생기지 아니하여 마음속에 있는 야즈나다따라와 같은 미친 바탕(狂性)이 스스로 쉬게 될 것이며,쉬는것이 곧 보리(菩提)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얻을 것이 아니니라,"하셨으니,이것이 인연인 것이 분명하고 뚜렷하거늘,어찌하여 여래께서는 인연을 깨부수어 버리시나이까? 저도 인연에 의해 마음에 깨우침을 얻었나이다. 오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이시여! 이 도리는 저뿐만 아니라 나이어린 유학(有學*煩惱를 끊기위한 戒,靜,慧의 三學을 공부 하는이)과 성문(聲聞)그리고 지금 이 모임 중에 있는 마하목건련과 사리불 그리고 수보리와 늙은 바라문(梵志* 淸淨行을 닦는 諸家佛子)들 조차도 부처님으로부터 인연법(因緣法)을 듣고 마음 내어 깨우침을 얻어 무루(無漏*煩惱의 사라짐)를 이루었거늘,지금 말씀하시길"보리(菩提)는 인연을 따르지 않느니라"하시니 그렇다면 왕사성의 구사리(外道)등이 말하는 자연이 제일 뛰어난 도리 이겠나이다.간절히 바라나니 크나큰 자비 베푸시어 어리석어 헤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지금 성중의 야즈나다따라의 미친 바탕(狂性)인 인연이 만일 사라져 없어진다면,곧 미치지 아니한 바탕(性)이 스스로 그러한 모습(自然)으로 나타날 것이니 인연이다.스스로 그런 것(自然)이다,라고 하는 견해(見解)는 마침내는 다음과 같을 것이니라.

 

아난아,야즈나다따라의 머리가 처음부터 자연이라면,처음부터 스스로 그러한 것(自然)이어서 자연 아닌 것이 없을 것인데 어찌하여 머리가 무섭다는 인연 때문에 미쳐 달아났던 것이더냐? 만일 자연인 머리를 인연으로 미쳤다면,어찌하여 자연을 인연으로 하는 그 머리는 잃지 않는 것이더냐? 두려워서 미친 것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에서 나온 것이라면 일찍이 바뀜이 전혀 없거늘 어찌하여 인연을 핑계거리로 삼는 것이더냐?처음부터 미친 것이 자연이라면,두려워서 미친 것이 처음부터 있을 것이거늘 미치지 전에는 미친병이 어느 곳에 숨어있었더냐? 미치지 아니 한 곳이 자연이라면 머리는 처음부터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이 없는데 어찌하여 미쳐서 달아나는 것이더냐? 만일 처음부터 머리가 깨어있었더라면 미쳐서 달아난 것을 헤아려 알기 때문에 인연이니 자연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말장난이 되는 것이니라.이와 같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세 가지 얽메임(三緣)이 끊어지는 것을 곧 보리(菩提)라 하느니라.만일 보리심(菩提心)이 생겼다면,나고 사라지는 마음(生滅心)이 사라지므로 이것도 다만 나고 사라짐(生滅)이니라. 사라지고 생함(滅生)이 다하여서 쓸모가 없는데도 만일 스스로 그러함(自然*存在性)이 있다면,이것은 환한 스스로의 그러한(自然心*존재의 全體性)이 생긴 것이고 나고 사라지는 마음(生滅心)은 사라진 것이니 이것도 역시 나고 사라짐(生滅)이니라.

 

나고 사라짐(生滅)이 없는 것을 자연이라 부른다면 마치 세간(세간)에 온갖 모습들이 서로 어울려서 한 몸을 이룬 것을 화합성(和合性)이라 부르고 서로 뭉치지 않고 어울리지 않는 것(非和合)을 본연성(本然性)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면 본연(本然)이라느니,본연이 아니라느니 비본연(非本然),화합(和合),화합이 아니라느니(非和合),화합(和合)과 본연(本然)이 함께 떨어졌다느니,떨어졌다 뭉쳤다(離合) 하는 것도 모두 아닌 이러한 말이라야 말장난이 아닌 도리(道理)라 부르느니라.보리와 열반이 아직도 멀기만 하여서,네가 여러 겁(劫)을 지나더라도 힘들여 부지런히 닦아 증명하지 아니하면,비록 온 누리에 계신 모든 여래(十方如來)의 십이부경(十二部經)의 맑고 깨끗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이치(妙理)외우기를 갠지즈 강 모래 만큼 하더라도 이는 말장난만 더할 뿐이니라.네가 비록 인연과 자연을 분명하고 똑똑하게 결정지어서 사람들이 너를 일러 다문제일(多聞第一)이라 말 한다마는,이렇게 여러 겁(劫)을 많이 들어 쌓아온 갈고 닦은 공부가 마등가의 재앙에서 벗어나는 데는 쓸모가 없었거니와,어찌하여 나의 불정신주(佛頂神呪*부처님法身이 정수리위에 천 장의 푸른 연꽃위에 앉아서 陀羅尼를 욈)에 의지하고서야 마등가의 마음속 음란한 불길을 깨부수고 쉬게 하였으며,아나함과를 얻었으며,나의 참다운 도리가운데서 정진 바라밀을 이루고,애욕(愛慾)의 강이 마르고,너로  하여금 해탈에 이르게 하였더냐?

 

그러므로 아난아,네가 비록 여러 겁(劫)동안 여래의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비밀스러운 도리(妙理)를 외웠다 하더라도 하루만이라도 번뇌 사라지는 업(無漏業)을 닦아 세간(世間)의 미움과 사랑이라는 두가지 괴로움에서 멀리 벗어나는 것만 못하느니라. 마등가는 전생부터 음녀였지만 불정신주(佛頂神呪)에 말미암아 그 애욕(愛慾)이 녹아 사라져서 이 무리 가운데서 이제 성 비구니라 불리고 라훌라의 어머니인 아쇼타라와 함께 전생(前生)으로부터의 비롯됨(因)을 깨부수고,여러 지나온 전생의 비롯함이란 것이 탐욕(貪慾)과 애착(愛着)이 괴로움을 이루는 것을 알아 한결같은 마음 일념(一念)으로 참다운 도리의 향(法香)이 스며들도록 닦아(熏修),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매이던 마음에서 나오게 되고,갈피를 잡지 못하여 헤매이던 그 마음에 수기(受記)를 받았거늘 어찌하여 너는 스스로 속아서 아직까지도 보고 듣는 것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더냐?"

 

둘째, 삼마지(三摩提* 三昧)를 말하며 일문(一門)으로 들어 가게하다

1,두 가지 결정(決定)한 뜻

아난과 모든 대중들이 부처님의 가르침 펴심을 듣고 의혹(疑惑)이 녹아서 사라지고 마음속에 만물의 결코 변하지 않는 참다운 모습(實相* 如如,眞如)을 깨달아 몸 마음이 가뿐해지고 일찍이 없었던 빼어난 참다운 도리를(未曾有)얻고,다시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 발에 정례(頂禮)하고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부처님께 말하였다."첫째가는 크나큰 사랑이신 청정보왕(淸淨寶王)께서는 저의 마음을 잘 열어주시며 이렇게 하심으로써 가지가지의 인연과 방편(方便)으로 끌어주시고 어둠 속에 빠진 온갖 중생을 인도하여 어루 만져주시고 괴로움의 바다에서 나오게 하시나이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이시여! 제가 이제 이와 같은 참다운 도리의 음성(法音)을 높이 받들어 여래장(如來藏)인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인 참다운 마음(妙覺明心般若)이 온 누리에 가득하여 여래께서 머무르시는 모든 나라(十方國土)에 있는 맑고 깨끗한 보배로 장엄한 묘각왕찰(妙覺王刹)을 머금은 줄은 알았으나,여래께서 꾸중하시길를 들은 것은 많으나 공부한 것이 없어서 닦고 익힘이 다다르지 못했다."하시오니저로 하여금 마치 여관에 머무르던 사람이 느닷없이 천왕(天王)의 은혜를 입어 아름다운 집을 하사받은 것과 같나이다.비록 큰 집을 얻었으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오니,오직 바라건데 여래께서는 크신 사랑 버리시지 마시고,저와 이 모임 중에 있는 어둠에 덮인 사람들이 소승(小乘)을 버리고 마침내는 여래께서 남음없는 열반(無餘涅槃*祖師禪은 十牛圖까지이나,여긴13번째 완전한 滅의 자리,祖師禪-攀緣眞如禪-으로 결코 알수 없는자리)을 얻으시려 처음 마음 내시던 과정(過程)을 가르쳐주시고,유학(有學)들로 하여금어떻게 하면 전날에 얽어매어진 것들을 복종하게 하여 다라니를 얻고,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知見)에 들어가겠나이까?

 

이와 같이 말하고는 이미 오체(五體)를 땅에 대고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스런 가르침을 기다리었다.이때,온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를 땅에 대고 모임의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처님의 자비스런 가르침을 기다리었다.이때,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께서는 모임중에 있는 성문(聲聞),연각(緣覺),들 중에 보리심(菩提心)에 아직 걸림이 있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또 이 다음에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말법 중생들이 보살심(菩薩心)을 일으키려할 적에 무상승(無上乘)의 이루 말할수 없이 빼어난(妙) 수행의 길을 열어보이시고자 아난과 모든 대중들에게 가르침을 펴 보이셨다.

"너희들은 기어이 보리심(菩提心)을 내어 여래의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삼매를 얻으려 할 때 고단함을 내지 않으려거든,마땅히 깨달음(覺)을 환하게 드러내려는 처음 먹은 마음(初心)으로 먼저 이치(理致)를 두 가지로 결정(決定)해야 하느니라.무엇을 처음 먹은 마음(初心)의 두 가지 결정한 이치(理致)라 하는 것이냐?

아난아,부처님의 첫째가는 빼어난 첫 번째 도리는 너희들이 만일 성문(聲聞)을 버리고 보살승(菩薩乘)을 닦아서 부처님의 지견(知見*意識에 의해 아는 것을 知,眼識에 의해 보는 것을 見)에 들어가려거든 마땅히 발심(發心)이 시작(因)된 자리(地)에서 결과(結果)의 자리(地)까지의 깨우침(覺)이 같게 이루어진 것인가 자세히 살펴야 하느니라.

 

아난아,만일 처음 시작하는 자리(因地)를 생멸심(生滅心)에 비롯한 수행을 바탕(本)으로 불승(佛乘)인 불생불멸(不生不滅)을 구하려 한다면 이러한 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이러한 이치이므로 네가 온 세상(器世間)을 분명히 살펴보아라.만들어진 모든 현상(法)은 모두 다 변하여 사라지거니와 아난아,너는 세간의 만들어진 모든 현상(法)을 살펴보아라.어느 것 하나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있는지 찾아보아라,그리고 마침내는 허공(虛空)이 문드러지거나,무너진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으리라.왜냐하면 허공(虛空)은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무너지거나 사라질 수 없는 것이니라.다시 말하면 너의 몸 중에서 단단하게 생긴 바탕(堅相)은 지대(地代)요,축축하게 젖어있는 것(潤濕)은 수대(水大)요,따뜻한 감촉은 화대(火大)요,움직이고 흔들리는 것은 풍대(風大)니라,이 사대(四大)의 얽매임이 너의 맑고 뚜렷하여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반야인 참다운 마음(妙覺明心)을 나누고 사이를 떼어놓아서는(分隔)보고,듣고,깨닫고,살피게 하여 처음부터 끄트머리까지 다섯 겹(五疊*色,受,想,行,識)으로 포개어져서 흐려지게 하는 것 이니라.어떠한 것을 흐러지게 하는 것이라 하느냐? 아난아,비유하면 맑은 물은 본디 그대로의 모습(本然)이 맑고 깨끗하지만,저 진흙과 재 가루(灰沙)종류의 본디 성질은 가로막는 것이어서 둘의 성품(性品)과 그 작용(作用)이 서로 같지 않느니라,세간에 어떤 사람이 있어 저 진흙을 맑은 물에 넣는다면,흙은 가로막는 성질을 잃어버리고,물은 맑고 깨끗함이 사라져서 그 모양과 바탕이 어지러워진 것을 흐린 것이라고 부르는 것이니 너의 다섯 가지 흐림(五濁*五陰)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아난아,네가 허공(虛空)이 온 누리(十方世界)에 두루 함을 볼 적에, 허공(虛空)과 헤아려 살펴봄(見)은 나누어지지 아니하여서,허공(虛空)은 모양과 바탕이 없음으로 있는 것이고 헤아려 살펴봄(見)은 깨달음(覺)이 없음으로 있는 것이어서 서로 엮여져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이루었나니,이것이 첫 번째 덮임(蘊)으로 겁탁(劫濁)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네 몸은 지금 사대(四大)가 서로 봍잡아 모습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듣고,깨닫고,아는(見聞覺知*이들의 性品은 장애가 없음)것을 막음으로써 가로막히게 되고 흙,물,불,바람(地,水,火,風)을 회전하여서 깨우쳐 알게(覺知*自我-ego의 誕生)하여서는 서로 엮여져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이루었나니,이것이 두 번째 덮임(蘊)으로 견탁(見濁)이라 부르는 것이니라.또 너의 마음속에 헤아림과 외우는 버릇이 기억됨으로 해서 참다운 모습(性)은 지견(知見*衆生心의 發顯인 所見)을 드러내고 모양은 육진(六塵*眼,耳,鼻,舌,身,意)을 나타내나니,진(塵)과 떨어져서는 모습이 있을 수 없고,깨달음(覺)과 떨어져서는 바탕(性)이 있을 수 없으므로 서로 엮여져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이루었나니,이것이 세 번째 덮임으로 번뇌탁(煩惱濁)이라 부르는 것이니라.또 네가 아침저녁으로 지견(知見-所見)이 나고 사라지기를 멈추지 아니하여 언제나 세간(世間)에 머무르려 하고,행위에 의해 기억되어진 버릇(業)은 회전하여서 그때마다 항상 또 다른 세상(世上)으로 옮아가는 것으로 서로 엮여져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이루었나니,이것이 네 번째 덮임(蘊)으로 중생탁(衆生濁)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너희들의 보고 들음(見聞)은 처음부터 다른 바탕(性)이 없으련만,육진(六塵)이 서로 멀어져서 아무 까닭 없이 달리하게 되었느니라. 바탕(性)속에서는 서로 아나,작용(作用)속에서는 서로 등져서 같고 다름의 기준을

잃고서는 서로 엮여져서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이루었나니, 이것이 다섯 번째 덮임(蘊)으로 명탁(命濁)이라 부르는 것이니라, 아난아,네가 이제 만일 보고,듣고, 깨닫고,앎(見聞覺知)으로 여래의 항상 하고,즐거우며,참된 나와 맑음(常樂我淨)과 넓게 맺으려 하거든  마땅히 먼저 나고 사라짐이 아닌 것에 의지하여 나고 죽는 본바탕 자리를 골라내고는 뚜렷하고 맑은 바탕(圓湛性)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니,맑음으로써 그 나고 사라지는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을 완전하고 원만한 깨달음(圓覺)으로 돌이켜 항복 받고(五種菩提 중에서 두 번째인 伏心菩提),나고 사라짐이 없는 참다운 본모습(無生滅性)인 보리(明覺*菩提,別相,個人性,五種의 菩提가 있으니,發心菩提,伏心菩提,明心菩提,出道菩提,無上菩提)를 마음의 처음자리(因地)로 삼은 다음에,닦고 증명하여서 성인의 과위(果位)를 뚜렷하게 이루어야 하느니라. 흐린 물을 맑게 하려면,깨끗한 그릇에 담아가지고 매우 고요하여 움직이지 아니하면 진흙과 재 가루는 스스로 가라앉고 맑은 물이 나타나나니,처음부터 객진번뇌(客塵煩惱)를 항복 받는 것(伏心布施)이요,진흙을 버리고 순수한 물만 남는 것(明心菩施)이 어리석음의 밑바탕(根本無名)을 영원히 끊는 것이라 부르느니라.

 

드러난 모습(明相)이 참되고 순수하여지면,모든 변화하여 나타나는 것들이 번뇌를 이루지 아니하고 열반의 맑고 깨끗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난 덕(妙德)에 뭉치어 어울리느니라. 두 번째 도리는 너희들이 반드시 보리의 마음(菩提心)으로 크나큰 용맹심이 생기어 보살승(菩薩乘)에 들어가려 한다면,온갖 인연으로 일어나는 모든 모습(有爲相)을 버리기를 결정하여야하고,마땅히  번뇌의 맨 처음을 자세히 살펴서 이 번뇌가 시작도 끝도 없이 업(業)을 드러내어 삶을 꾸미나니(潤生),어떻게 지으며 어떻게 받는 것이더냐? 아난아,네가 보리(菩提)를 닦으면서 만일 번뇌의 자리(根塵)가 어디에서 뒤 바뀌었는지 알지 못할 것이니,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번뇌의 자리를 오히려 알지도 못할 것이니,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번뇌의 자리를 오히려 알지도 못하면서,어떻게 항복(降伏)을 받을 것이며,어떻게 여래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겠는냐? 아난아,너는 세간(世間)에서 매듭을 푸는 사람을 살펴보아라. 묶여있는 곳을 보지 아니하고 어떻게 풀 줄을 알겠느냐? 네가 허공(虛空)을 무너뜨렸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왜냐하면 허공(虛空)을 무너뜨렸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왜냐하면 허공(虛空)을 무너뜨렸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왜냐하면 허공(虛空)은 생긴 모양이 없어서 맺히고 풀 것도 없느니라.다시 말하면 지금 너의 눈,귀,코,혀와 더불어 몸 마음의 여섯이 도둑과 관계를 맺어서는 스스로 집안의 보물을 빼앗으니,이러함으로 말미암아 시작도 끝도 없는 중생들의 세계에서 묶임이 생기어 이 세상(器世間)을 벗어날 수가 없느니라.

 

아난아,어찌하여 중생세계(衆生世界)라 부르는 것이더냐? 세(世)는 천류(遷流*시간)를 이루고,계(界)는 방위(方位*공간,장소)를 이루나니,너는 이제 마땅히 동,서 남,북,동남,서남,동북,서북과 위아래는 계(界*공간,장소)를 이루고 과거,미래,현재는 세(世)를 이루나니,공간은 십(十)이요,시간은 삼(三)으로 되어있는니라. 온갖 중생들은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것에 엮여져서 몸속에서도 서로 바꾸고,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서로 참견하느니라. 이 공간(界)의 참다운 모습(性)이 비록 온 누리(十方)에 베풀어졌지만,정해진 위치가 분명한 것은 세간(世間)에서 이 동,서,남,북만 부르니,상하는 정해진 위치가 없으며 중간 또한 정해진 위치가 없느니라.네 방위는 분명하여서 시간과 더불어 서로 참견하므로 삼(三*과거,현재,미래의시간)과 사(四*동,서,남,북의 공간),사(四)와 삼(三)이 분명하게 회전하여서 십이(十二)가 되고,시간의 흐름에 세 번 겹쳐져서 일,십,백,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 묶어보면 육근(六根)속에 공덕이 천이백 개가 있느니라. * 시간(3)과 공간(4)이 겹쳐저서 기본인 12를 만들거니와 이것이 우리 안에서는 無明-行-識-名色-六入-觸-受-愛-取-有-生-老-死라는 12가지 緣起法에 의해 회전 되는 것이고(이것이 미래라는 시간을 만듦)여기서 십(十)이란,사미(四微-色,香,味,觸)와 육망(六妄-眼,耳,鼻,舌,身,意)을 합한 것이 밖의 경계를 만들고,중생들의 또 다른 탁한 색(濁色)을 만들어져서 나름의 허망한 경계(境界)를 만들어서 진실하다 믿는 거랍니다.바로 생명감(生命感)이지요,이걸 불교에서 는 상(想)이라 부릅니다,이것이 1.200이랍니다,아래를 보면 좀 이해가 쉽게 가리라 믿습니다.        

 가로x세로=色, 色X높이=受, 受X(속.近)=想, 想X(動,靜)=行, 行X(有.無)=識

여기서 X 는 참견(간섭)을 표현한 거랍니다* X=짜여져서  모든 것을 받아들여 존재의 모습을 만드는 기본은 상(想-有,존재)이 되기에 여기서 그 도식을 풀어 보는 거랍니다.

一臺은 시간과 공간이 한번 겹쳐진 것으로 3X4 내지는 4X3으로 12를 나타내며,우리 안에서 12인연법을 생성합니다.이것이

二臺을 하면 四微와 六塵이 뭉친 것인 10이 다시 서로 어울려 뭉쳐야 하는 것으로 12X10=120이 되는 거고 여기에서 수가 생기는 거랍니다.

三臺을 하면 受에다 다시 시간의 흐름에 의해 만들어진 홀로그램(허망한 입체)을 건립하는 것이므로 과거,현재,미래에의 9에다 지금 이 순간인 1을 더한 것을 서로 뭉치어 얽어매면 120X10=1.200이 나오는 거랍니다. 이것이 중생 하나 하나의 성립 과정의 기본이 되는 數랍니다.

 

아난아,네가 이 가운데서 넉넉하지 못한 것을 골라 보아라.눈을 말하자면 살펴보는 것은 뒤는 어둡고 앞은 환한데,앞쪽은 아주 환하고 뒤쪽은 아주 어두우며,좌우의 옆을 합해서 3분의2를 살펴볼 수 있으니,결론(結論)지어 말하면 공덕을 쌓은 것이 완전하지 못하여 3으로 나눠서 말할 때 한 부분은 덕이 없으니 눈은 3분의2인 800공덕이니라. 귀를 말하자면 온 누리에 빠짐이 없이 두루 들을 수 있어서 가깝고 멀 적에는 움직이는듯하나,고요할 적에는 다함이 없으니 귀는 1.200공덕이 있느니라.코를 말하자면 냄새를 맡는 것은 들숨과 날숨에 의해 통하는 것이니,들어감과 나옴이 있어 중간에 서로 엇갈림으로 해서(*들고 내쉴때 잠깐의 머춤이 있음)모자라나니,코의 자리는 3분의1이 모자라서 당연히 코는 800공덕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혀를 말하자면 모든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이 다하도록 슬기롭게 널리 떨치어서 말은 전달되는 곳이 있으나,이치(二致)는 다함이 없어서 마땅히 혀의 자리는 1.200공덕으로 가득 차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몸을 말하자면 닿는 것(觸)을 헤아려 거스려고 따름을 알아차리지만, 뭉쳐서 어울릴 때는 알고 떨어질 적에는 알지 못하느니,떨어짐은 하나요,뭉치면 짝을 이루니라.몸의 자리는 3분의1이 모자라서 당연히 몸은 800공덕임을 알아야 하느니라.뜻을 말하자면 온 누리(十方)의 과거,현재,미래와 모든 세간법(世間法)과 출세간법(出世間法)을 고요히 머금고 있으며,성스러움을 비롯하여 모두를 머금지 아니한 것이 없어서 그 끝이 다함이 없으니,마땅히 뜻이 자리는1.200공덕이 가득 차 있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아난아,네가 이제 나고 죽는 것을 거슬러서,흐름의 처음자리로 돌아가 나고 사라짐이 아닌 자리에 이르려 한다면,마당히 이 육근(六根)의 받아쓰는(受用)자리(根)들이 어느 것을 뭉치고,어느 것은 떨어지고,어느 것은 깊고,어느 것은 얕으며,어느 것은 뚜렷하게 통(圓通)하고,어느 것이 두루 가득(圓滿)하지 못하는 지를 실제로 체험(體驗)해야 할 것이니,만일 이와 같이 저 시작도 끝도 없이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으로 엮여져있는 업(業)의 흐름을 거슬러서 뚜렷이 통함(圓通)을 좇아서 뚜렷하게 통하는 이 자리(圓通根)를 깨우칠 수만 있다면,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으로 엮여진 불원근(不圓根)과는 일겁상(日劫相*사물이 서로 엄청나게 다름,天壤之差)으로 사이가 벌어지게 되느니라.내가 지금 여섯 자리(六根)의 맑고 뚜렷한 반야(明)가 있는 근원(本所)의 공덕의 수량을 이와 같이 갖추어 드러내보였으니,네가 들어갈만한 곳을 자세히 골라 보아라.내가 마땅히 반야를 드러내어(發明)너로 하여금 더욱  나아가게 하리라.온 누리의 여래께서는 저 십팔계)에서 하나하나씩 수행하여 모두 두루 가득한 첫째가는 빼어난 보리(無上布施)을 얻었으며,그 속에는 또한 넉넉하고 모자람이 없어지마는,너의 자질(資質)이 부족하여 그 속에서 뚜렷이 스스로 있는(自在) 슬기(慧*般若)에 다다르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널리 펄치어 너로 하여금 하나의 문으로 깊이 들어가게 하리라. 하나의 문에 들어가면 거짓되고 미덥지 못함이 없어져서 저 육근(六根)이 한 순간에 맑고 깨끗해지는 것을 알리라."아난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온누리에서 제일 존귀하신 분(世尊)이시여! 어떻게 흐름을 거슬러서 하나의 문에 깊숙이 들어가며,육근(六根)으로 하여금 한 순간에 맑고 깨끗해지게 되는 것이나이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아난아,네가 지금 수다원과(果位)를 얻어 삼계(三界)의 중생들이 끊어야할 견혹(見惑*후천적인 煩惱,선천적인 煩惱는 思惑또는 修惑)을 이미 사라지게는 하였으나,아직도 육근(六根)중에 오랫동안 쌓여져온 끝도 없는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버릇(역*惑*이것이 思惑또는 修惑)은 아직 알지 못하니,저 버릇은 수혹(修惑)을 끊음으로써 얻어지는 것이거늘 하물며 나고,머물고, 다르게 변하고,사라지는 (生,住,異,滅)이 버릇(習)중에서 어느 것을 나누고 자른다는 말이더냐? 이제 너는 또 눈앞의 육근(六根)이 하나로 이루어졌는지 여섯 개로 이루어졌는지 살펴보아라.아난아,만일 하나로 이루어졌다면,귀는 어이하여 아니 보이고,눈은 어이하여 아니 들리며 머리는 어이하여 밟지 아니하고,발은 어이하여 말이 없는 것이더냐?만일 이 육근(六根)이 여섯 개로 이루어졌다면,내가 지금 이 모임에서 너에게 미묘(微妙)한 불법으로 들어가는 문(法門)을 널리 펼쳐 알리려 하는데 너의 육근(六根)중에서 어느 것이 받아 오는 것이더냐? 아난이 말하였다."저는 귀를 써서 듣나이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네 귀가 스스로 듣는데,몸과 입이 무슨 관계이기에 입으로는 도리를 묻고 몸은 일어서서 공경하여 받는는 것이냐? 이러므로 마땅히 하나가 아니면서 여섯이 이루어지고,여섯이 아니면서 하나가 이루어지며,너의 바탕은 처음부터 하나도 아니거 여섯도 아니니라.

 

아난아,이 자리(根)는 하나도 아니고 여섯도 아니지마는,아주 먼 옛적부터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음으로해서 너의 바탕이 쇠하여 져서는 이 몸(圓湛*個人性)에 하나와 여섯이라는 도리(義)가 생겼으니네가 수다원은 얻어서 여섯(六*見惑이라는 分別起 煩惱-이생에서 만들어진것)은 다하여 없어졌지만 하나(一*思惑이라는 俱生起 煩惱-타고날때부터 지니고)는 아직 사라지지 아니 하였느니라.말하자면 큰 허공(大虛空)을 여러 그릇에 섞어서 뭉쳐놓고는 그릇의 모양이 다르므로 공(空)이 다르다고 부르고,

그릇을 없애고 공(空)을 살펴보고는 공(空)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처럼,저 큰 허공(大虛空)이 어찌하여 너와 함께 하기도 함께 아니하기도 하겠느냐?더더군다나 하나라느니 하며 부를 수 있겠느냐?너의 분명히 알아서받아들이는 육근(六根)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이루 말할 수없는 뚜렷함(妙圓)속에서 밝고 어두운 서로 다른 모습으로 말미암아,육근(六根)이 점(粘*반죽,12연기의 회전으로 일어나는 내부의 서로 끌어당겨짐에 의한 뒤엉킴)에 빠져서는 봄(見)이 드러나고,봄(見)의 본바탕은 모습(色)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어서,모습(色)과 어울리게 하는 자리(眼根)를 이루었나니,자리(眼根)를 처음 다스리는 것(元目)은 맑고 깨끗한 사대(四大)가 하게 되고, 포도 같은 모습을 눈(眼)이라고 부르는 것이며,움직여서 일정한 자리(根)가 없는 사진(四塵* 色,香,味,觸)으로부터 흐르고 내달려서 모습(色)과 어울리는 것이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뚜렷함(妙圓)속에서 움직임과 고요함의 서로 부딪침으로 말미암아,육근(六根)이 점(粘*반죽,12연기의 회전으로 일어나는 내부의 서로 끌어당겨짐에 의한 뒤엉킴)에 빠져서는 들음(聽)을 드러내고,들음(聽)의 본바탕은 소리(聲)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어서,소리(聲)를 보존 하는 자리(耳根)를 이루었나니,자리(耳根)를 처음 다스리는 것(元目)은 맑고 깨끗한 사대(四大)가 하게 되고,새싹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모습을 귀(耳)라고 부르는 것이며,일정한 자리(根)가 없는 사진(四塵)으로부터 흐르고 내달려서 소리(聲)과 어울리는 것이니라.이루 말할 수 없는 뚜렷함(妙圓)속에서 통하고 막히는 것이 서로 밀어냄으로  말미암아,육근(六根)이 점(粘* 반죽,12연기의 회전으로 일어나는 내부의 서로 끌어당겨짐에 의한 뒤엉킴)에 빠져서는 냄새 맡음(齅)을 드러내고 냄새 맡음(齅)의 본바탕은 향기(香)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어서,향기(香)를 받아드리는 자리(鼻根)를 이루었나니,자리(鼻根)를 처음 다스리는 것(圓目)은 맑고 깨긋한 사대(四大)가 하게 되고,한 쌍의 골무구멍과 같은 모습을 코(鼻)라고 부르는 것이며,일정한 자리(根)가 없는 사진(四塵)으로부터 흐르고 내달려서 향기(香)와 어울리는 것이니라.이루 말할 수 없는 뚜렷함(妙圓)속에서 담담(淡淡)함과 여러 가지 맛(味)이 서로 섞이어 뭉침으로 말미암아,육근(六根)이 점(粘*반죽)에 빠져서는 맛봄(嘗)을 드러내고,맛봄(嘗)의 본바탕은 맛(味)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어서,맛(味)을 붙들어 매는 자리(舌根)를 이루었나니.자리(舌根)를 처음 다스리는 것(圓目)은 맑고 깨끗한 사대(四大)가 하게되고,초승달 같은 모습을 혀(舌)라고 부르는것이며,일정한 자리(根)가 없는 사진(四塵)으로부터 흐르고 내달려서 맛(味)과 어울리는 것이니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뚜렷함(妙圓)속에서 떨어짐과 뭉쳐 어울림(離合)이 서로 엇갈려 비벼짐(摩交)으로 말미암아,육근(六根)이 점(粘-반죽)에 빠져서는 깨달음(覺)을 드러내고,깨달음(覺)의 본바탕은 닿음(觸)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어서,닿음(觸)을 찿아내어 붙잡아서는 자리(身根)를 이루었나니,자리(身根)를 처음 다스리는 것(元目)은 맑고 깨끗한 사대(四大)가 하게 되고,장구의 양쪽 빰(가죽)과 같은 모습을 몸(身)이라고 부르는 것이며,일정한 자리(根)가 없는 사진(四塵)으로 부터 흐르고 내달려서 닿음(觸)과 어울리는 것이니라.이루 말할 수 없는 뚜렷함(妙圓)속에서 나고 사라지는 것이 서로 이어받음(相續)으로 말미암아,육근(六根)이 점(粘-반죽)에 빠져서는 슬기(知)를 들어내고,슬기(知)의 본바탕은 법(法*物과心의 모든 일어나는 現象)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어서,법(法)을 가려 뽑고 취하는 자리(意根)를 이우었나니,자리 (意根)를 처음 다스리는 것(元目)은 맑고 깨끗한 사대(四大)가 하게 되고,조용하고 그윽한 방(幽室)에서 헤아려 생각해 보는 것(見)과 같은 것을 헤아려 생각함(意思)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일정한 자리(根)가 없는 사진(四塵)으로부터 흐르고 내달려서 법(法)과 어울리는 것이니라.아난아,이와 같이 육근(六根)인 보리(明覺*菩提,個人性)로 반야(覺明*般若)를 헤아리려함으로 말미암아,저 아주 세밀하고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점(粘*반죽,12연기 회전으로 일어나는 내부의 서로 끌어당겨짐에 의한 뒤엉킴)이 모습(*존재감이라는 自存心)을 드러내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지금 어둠과 떨어지고 밝음과도 떨어지면 헤아려 생각해 보는 마음(見體)이 없을 것이고,움직임과 떨어지고 고요함과도 떨어지면 들으려는 마음(聽質)이 없을 것이며,통함도 없고 막힘도 없으면 냄새 맡는 참다운 모습(齅性)도 생기지 아니 할 것이고,맛이 여러 가지로 변하는 것도 아니고 담담함도 아니면 맛보는 것(嘗)이 나오는 곳이 없을 것이요,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울려 뭉치는 것도 아니면 닿음(觸)을 깨닫는 것이 본디 없을 것이며,사라짐도 없고 태어나는 것도 없다면,어찌 깨달아서 알 수 있겠는냐? 네가 단지 움직임(動),고요함(靜),뭉쳐서 어울림(合),떨어짐(離),담담함(할),여러 가지맛(變),통함(通),막힘(塞),태어남(生),사라짐(滅),밝음(明),어둠(暗)의 열두 가지 인연으로 일어나는 모든 현상(有爲)의 모습을 따르지 않고,어느 하나의 자리(根)라도 반죽(粘)속에서 벗어나게 하여 마음을 항복 받으면(*伏心菩提),그 항복받음으로 인하여 본래의 반야(本明)가 환하게 들어나고,환한 참다운 모습(耀性)이 반야(明)를 들어내게 되면,나머지 다섯 반죽(粘)들도 당연히 뚜렷하게 벗어나게 되느니라.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경계(境界)에서 일으킨 지견(知見)을 따르지 않게 되면,이 육근(六根)의 능력이 서로 하나가 되어 밝음(*깨달아서 틀림이 없어짐)은 자리(根)를 따르지 아니하고(*遺離 顚倒夢想),자리(根)는 밝음을 드러내는 것이니라.아난아,너는 어이하여 알지 못하느냐? 지금 이 모임중에 아나율다는 눈이 없어도 보고,발란다 용왕은 귀가 없어도 들으며,갠지즈강 여신은 코가 아니어도 향기를 맡고,교범바제는 혀가 아닌 다른 것으로도 맛을 알고,주공신(主空神)은 몸이 없는데도 닿음(觸)이 있으므로 여래의 빛 속에 잠깐 비추이어 나타나지마는

 

원래 본바탕이 바람으로 본디 몸이 없고,온갖 멸진정(滅盡定)과 열반을 얻은 성문(聲聞)과 이 모임 속에 같이 있는 마하가섭은 오래전에 의근(意根)이 사라졌기에 마음을 생각에 비롯하지 아니하고,뚜렷하게 밝음으로 깨달아 아는 것이니라. 아난아,이제 네가 모든 자리(根)를 확실하게 뽑아버리고 안으로 환하게 반야를 드러내기만 하면,이 일정한 자리가 없는 경계(境界*虛妄한 相-드러난모습)와 이세상(器世間)의 온갖 변화하는 모습들이 끊는 물에 얼음 녹듯이,당연히 생각도 첫째가는 빼어난(無上) 깨달음(*菩提)으로 바뀌어 질 것이니라.아난아, 마치 저 세상 사람들이 눈으로 어느 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을 감아서 눈앞이 캄캄해지면 육근(六根)이 머리에서 발까지 어두워지거니와,그 사람이 손으로 몸을 더듬으면 그가 비록 보지는 아니하더라도 머리에서 발까지를 낱낱이 분별(分別)하여 아는 것처럼,깨달음(覺)도 이와 같으니라.헤아려 살펴보는 것(見)을 얽어매는 것(緣)은 밝음에서 비롯된 것으로,어두우면 볼 수 없거니와,밝음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드러나는 것,다시 말하면 온갖 어두운 모습들이 영원히 쓸모없어지고,현혹시키는 자리(근)와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모습들이 이미 다 녹아버렸다면,어찌하여 깨달음이란 환한 빛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빼어나게(묘)두루 하지 않겠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말하였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깨달으려는 마음을 내어서 생멸(생멸)의 변화가 없이 늘 존재함(상주)을 구하려면,닦아 증명해서 성인이 얻는 지위(과위)의 이름과 서로 맞아야(상덕)한다"고 말씀하셨나이다.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세존)이시여! 성인이 얻는 지위(과위)중의 보리,열반,진여(진여),불성(불성),암마라식(암마라식,*第9識 法界體性智),공여래장(空如來藏),대원경지(대원경지(大圓鏡智*第 8識)등의 이 일곱 종류의 이름은 서로 다르나,맑고 깨끗하며 두루 가득 차 있고,

 

모습의 바탕(體性)이 단단하여서*금강왕(金剛王*절대 다이야몬드가 아님)같이 생멸(生滅)의 변화가 없이 늘 존재하거늘(常住),만일 이 보고 듣는 것(見聽*知見과는 分別바람,知는 意識으로 아는 것,견은 안식에 의해 보는 것)이 밝음(明),어둠(暗),움직임(動),고요함(靜),통함(通),막힘(塞)과 떨어져서 마침내는 모습(體)이 없다고 하시오면,생각하는 마음은 앞에 펼쳐지는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여러 모습(前塵)과 떨어져서는 본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하겠나이다.어찌하여 장차 결국에는 끊어지고 사라져버리는 이 생각하는 마음을 닦는 본바탕(因)으로 삼아 여래의 일곱 가지 생멸(生滅)의 변화가 없이 늘 존재하는(常住)성인이  얻는 지위 (果位)를 얻을 수 있겠나이까? 온 누리에서 제일 존귀한 분(世尊)이시여! 만일 밝음(明)과 어둠(暗)을 떠나서는 헤아려 살펴봄(見)이 마침내는 공(空)하다면,마치 앞에 펼쳐지는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여러 모습(前塵)

이 없다면 생각도 스스로의 됨됨이(自性)가 사라져서,이리 저리 왔다 갔다 다 뒤져보고 아주 미세한 곳까지도 받들어 구하여 봐도 본디 내 마음과 내 마음이 머무르는 자리가 없을진대,장차 무엇을 본바탕(因)으로 삼아 첫째가는 빼어난 깨달음(無上覺)을 구하오리까? 여래께서 저번에 말씀하시길"맑고 참된 본마음(湛精)은 온 누리에 가득하여 변함이 없다(圓常)"하신 것이 참된 말씀만 하시는 분이라 부를 수 있으오리까?바라건데 크나큰 자비 베푸시어 탐욕으로 뒤덮인 제 마음을 부디 열어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너는 많이 듣는 것만 열심히 하고 여러 번뇌(諸漏)는 아직 다하지 못하여서 마음속에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는(顚倒)고시 어디인줄 알면서도,참으로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김이(顚倒)눈앞에 펼쳐져 있는 줄은 아직 알지 못하는구나.네가 진심으로는 아직도 믿지 못하는 것 같으니,이제 속세(塵俗)의 여러 일을 가지고 너를 시험하여 너의 의심을 사라지게하고 엎드리게 할 것 이니라.이때 여래께서는 라훌라를 시켜서 종소리가 한 번 나도록 치게 하시고 아난에게 물으셨다."네게 지금 아니 들리느냐?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였다."저희들이 듣나이다."종소리가 다하여 사라졌을 때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네게 지금 아니 들리느냐?"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대답하였다."들리지 아니하나이다."이때 라훌라가 다시 종을 한번 두드리고,부처님께선 또 물으셨다."네게 지금 아니 들리느냐?"아난과 대중들이 다시 대답하였다."저희들이 듣나이다.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물으셨다."너는 어느 것이 들리는 것이고

어느 것이 들리지 아니하는 것이더냐?"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께 대답하였다."두드린 연후에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저희들이 듣는다 하고,두드린 지 오래되어 소리가 흩어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들리지 않는다고 부르나이다."여래께선 다시 라훌라에게 명을 내려 종을 두드리게 하시곤 아난에게 물었다.

 

"네게 지금 소리가 나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소리가 나나이다."잠깐 있다 소리가 사라진 뒤에,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너희에게 지금 소리가 나느냐?"아난과 대중들이 대답하였다."소리가 나지 아니하나이다." 잠시 후 라훌라가 다시 종을 두드렸고,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너희에게 소리가 나느냐?"아난과 대중이 함께 대답하였다. "소리가 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너희는 어느 것을 소리가 난다하고,어느 것을 소리가 없다 하느냐?"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께 대답하였다."두드려서 종소리가 나는 것을 소리가 나는 것이라 부르고,두드린지 오래되어 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까지 없어지면 소리가 없다 하나이다." 부처님께서 아난과 대중에게 말씀하셨다."너희들은 지금 어찌하여 스스로 말을 뒤흔들어 어지럽게 하는 것(矯亂)이냐?"아난과 대중들이 함께 부처님께 물었다."저희들이 어찌 말을 뒤흔들어 어지럽게 한다 하시나이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들리느냐 물으면 너는 듣는다고 말하고,다시 너에게 소리가 나느냐 물으면 너는 난다고 말하니,듣는다거나 소리 난다고 말할지라도 일정하지 않으니,이와 같은 것을 어찌 말을 뒤흔들어 어지럽게 한다(矯亂)고 부르지 않겠느냐? 아난아,소리가 사라지고 메아리가 없어진 것을 너는 들음이 없다 말하는 것이니,만일 참으로 들음이 없고 듣는 본바탕(性)이 이미 사라졌다면 고목과 같을 것인데 두드려서 다시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어찌 아는 것이더냐? 있는 줄 알고 없는 줄 아는 것은,스스로 이 소리의 허망한 경계(境界)가 어쩔 땐 있다가 어쩔 땐 없다가 하는 것이지,어찌 저 듣는 본 바탕(性)이 너로 하여금 있다가 없다가 하겠느냐?

 

듣는 본바탕(聞性)이 참으로 없다면 무엇이 없는 줄을 어찌 알겠느냐? 그러므로 아난아,듣는 본바탕(聞性)속에서 소리가 스스로 생겼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지,네가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소리가 생기고 소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어서 너의 듣는 본바탕(聞性)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 것은 아니니라.네가 오히려 어리석어 거짓을 참이라고 여기어 소리에 홀리게 되여 듣는다고 하는 것이니,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性-참다운모습)을 끊어버림으로써 정신이 헷갈리고 흐리멍텅하여져서는 어찌 의심을 하는 것이냐? 끝내 말을 듣지 않고,온갖 움직임(動),고요함(靜),닫힘(閉),막힘(塞),열림(開),통함(通)과 떨어져서는 듣는 본바탕 (聞性)이 없다고 말하여서는 아니 되는 것이니라.마치 깊이 잠든 사람이 침상에서 깊이 잠들었을 적에,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이 다듬이질을 하거나 절구질을 하면 그 사람이 꿈결에 절구질 쩔 땐 북을 두드리는 소리로 들리고 어쩔 땐 북을  두드리는 소리로 들리고 어쩔 땐 종을  치는 소리로 들려서 꿈속에서 스스로"그 종소리가 나무와 쇳소리 같다,고 의심하였다가,홀연히 잠에서 깨어나서는 한갖 절구소리인줄을 알고는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내가 방금 꿈을 꿀 적에 이 절구 소리를 오히려 북소리로 들었노라,"고 말할 것 이니라. 아난아,이 사람이 꿈속에서 고요함(靜),흔들림(搖),열림(開),담힘(閉),통함(通),막힘(塞),의 그 모양을 어찌 기억 하랴마는,비록 잠이 들어도 듣는 본바탕(聞性)은 어둡지 아니 하여서 네 모습이 다하여서 목숨이 자리바꿈을 하여,네가 사라진다고 이 본바탕(性)이 어찌 사라지겠느냐? 

 

모든 중생들이 아득한 옛적부터 온갖 모습(色)과 소리(性)를 따름으로써(*모습을 따름으로 空間의 선택을,소리를 따름으로써 時間의 흐름에 빠짐)생각을 쫓아 유전(流轉*煩惱 때문에 생사를 수없이 되풀이하며 迷妄의 세계를 떠돎)하면서,변함없고 이루 말할 수 없는 맑은 본바탕(性)인 깨달음(悟)이 아직 열리지 않아서 변함없는 그 자리를 따르지 않고,온갖 나고 사라지는 것만 쫒아 다니므로 태어날 때마다 여러 가지 물이 들어서 유전(流轉)하거니와 만일 나고 사라지는 변화가 없이 늘 함께 하는 본바탕(성)이 지금 비치면,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여러 모습(塵根)과 헤아리는 마음(識心)이 당장 사라지고 흩어질 것 이니라.생각의 모습(想相)은 거짓되고 미덥지 못한 경계(境界)로 이루어졌고 헤아리는 마음(識精)은 티끌로 이루어진 것이니,이 두 가지와 멀리 떨어지면 너의 법안(法眼*菩薩이 一切 衆生을 제도 하기위하여 모든 法을 觀察하는 눈)이 그때에 선명하게 드러나리니(淸明)어찌 첫째가는 빼어난 깨달음(無上知覺)이 이루어지지 않겠는냐?"

                                                                                                                     제4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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