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법등(法燈)"어두운 밤에는 등불에 의지하라"(제6부)

추운보광 박 근 석 2022. 3. 17. 19:22

수행과 서원

<육바라밀>

1,보시(布施: 베풀음)

보시(布施) 바라밀이란 어떤 것인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기르고,사견(邪見:그릇된 견해)을 가진 사람들을 가엾이 여겨서,기꺼이 현명(賢明)하게 가르처 사견에서 벗어나게 한다.중생들을 보호하고 구제하되,하늘을 넘고 담을 넘어 하해(河海)와 같이 널리 중생들에게 보시하는 것이다.굶주린 자에게는 음식을 주고,목마른 자에게는 마실 것을 준다.추위에 떠는자에게는 옷을 주고,뜨거운 고뇌(苦惱)에 빠져 있는 자에게는 서늘한 안락(安樂)을 준다.병(病)든 자는 약(藥)으로 구제(救濟)하고,진귀한 보물이나 처자(妻子)와 국토(國土)까지도 구하는 자에게 베풀어서,부모가 자식을 키우듯 해야 한다.

                                                                                                                           <육도집경>

 

-지계(持戒:계율을 지킴)

지계(持戒)바라밀이란 어떤 것인가? 어리석거나,흉악(凶惡)하여 생명을 죽이기를 좋아하거나,탐욕(貪慾)으로 남의 것을 도둑질하거나.더러운 음행(淫行)을 하거나 이간질하거나,사나운 말을 하거나,속이거나,아첨하거나,질투하거나,성내거나,어리석은 마음으로 부모를 불안(不安)하게 하거나.성인(聖人)을 욕보이거나,부처님을 비방(誹謗)하거나.어진 사람을 괴롭히는 등의 모든 악행을,자신의 몸으로 포를 뜨고 젓을 담아 시장에 내다 팔지언정,결코 행하지 않는 것이다.삼보(三寶:부처님,가르침,불교 교단)를 믿고,부모와 스승과 국왕(국가공무원,경찰,군인)과 시주(施主: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품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는 모든 사람)의 네 가지 은혜에 보은(報恩)하는 마음으로 널리 중생(衆生)을 구제하는 것이다.

 

-인욕(忍辱:욕됨을 참음)-

인욕(忍辱)바라밀이란 어떤 것인가?보살이 깊이 생각해 보니,중생들은 어리석서 교만(驕慢)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크게 생각하고,항상 남을 이기려고 한다.중생(衆生)들을 살펴보면,어리석음이 있으며 탐욕과 질투가 있다.마음속으로는 탐욕과 질투심을 일으키고,밖으로는 원한(怨恨)과 분노심(忿怒心)을 일으키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여,그치지 않는다.중생(衆生)을 이렇게 미치고 취하여 어둠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의 세계를 돌아다니면서,무량(無量),한 괴로움을 받고 있다.보살은 이것을 보고 한탄(恨歎)하기를,중생이 나라를 망치고,가정(家庭)을 파괴(破壞)하고,자기 자신을 위험(危險)에 빠트리고,민족을 멸망(滅亡)케 한다.살아서 이와 같은 재앙(災殃)이 있고.또 죽어서는 삼악도(三惡道)의 괴로움이 있게 되는 것은,인욕(忍辱)하는 마음을 가지고,자비(慈悲)를 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살은 이를 깨닫고 스스로 맹세하여 기원하기를 "나는 화탕지옥의 괴로움과 소금에 절여지는 재앙을 당할지언정,결코 중생들에게 성을 내어 독한 마음으로 가해(加害)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였다.무릇 참을 수 없는 것을 참는 것이 만복(萬福)의 근원(根源)이다.이렇게 스스로 깨달은 후에 세상에 태어날 때마다 자비를 행하였다.중생들이 자기를 욕하고,때리고,재보(財寶:재물과보배)와 처자와 국토를 빼앗고,몸을 위태롭게 하고, 목숨을 해쳐도,보살은 항상 모든 부처님의 인욕의 힘으로 복을 삼아,성내는 악독한 생각을 없애고,자비로써 그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을 구제하고 보호하였다.그리하여 그들이 허물을 면하게 되면 그것을 기뻐한다.                                                            < 육도잡경>

 

-정진(精進:노력하여 나아감)

정진(精進)바라밀이란 어떤 것인가? 깊은 도(道)에 전념)하면서 그 도를 향해 나아감에 게으름이 없는 것이 정진이다.눕거나,앉거나,길을 가거나,눈으로는 항상 모든 것을,부처님들이 신령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해서 자기 앞에 서 있는 모습으로 본다. 귀로는 모든 소리를 항상 부처님께서 가르치는 덕음(德音)으로 듣는다. 코로는 도(道)의 향기(香氣)를 맡고,입으로는 도를 말하고,손으로는 도를 행하는 일을 받들고,발로는 도(道)의 집에 서서, 그 뜻을 호흡(呼吸)하는 사이에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중생들을 걱정하고 불쌍히 여기되,중생(衆生)들이 무명(無明:바르게 보고,듣고, 알지못함) 의 긴 밤을 지내면서,삼독(三毒:탐욕,성냄,어리석음)의 불길로 뜨겁게 끊어오르는 고통의 바다를 떠도면서,구제할 수 없는 악독한 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살은 알고있다.때문에 마치 지극한 효자가 부모를 잃은 것처럼 중생(衆生)들을 걱정한다.중생을 구제하는 데에 있어서 앞에 화탕지옥의 고난(苦難)이 있고.무서운 칼날의 위험(危險)이 있다 할지라도,몸을 던지고,수명(壽命)을 바치더라도 즐거이 중생의 고난을 구제한다.중생들이 육도(六道: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하늘세계로 중생(衆生}이 인과응보에 의해서 윤회에서 벗어나 영화(榮華)를 얻도록 하는 데 뜻을 둔다.                     <육도집경>

 

-선정(禪定: 마음을 고요히 통일함)   

선정(禪定)바라밀이란 어떤 것인가?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하나로 하여, 여러 착한 일에 합일하는 것이 선정이다. 선정 바라밀이란 마음을 단정히 하고 그 뜻을 하나로 하여,여러 좋은 것(善)을 모으고,마음속의 모든 더러운 악(惡)을 선(善)으로 소멸하는 것이다.선정에는 사선(四禪)이 있다. 제일선(第一善):의 행은,욕심내서 애착함과 다섯 가지 요사(妖邪)스런 일을 제거하는 것이다.즉 눈으로 색(色:물체와 형상)을 보고,마음이 음탕해지고 흠분되는 것을 제거하며,귀로 듣는 소리와 코로 맡는 냄새와 입으로 보는 맛과 몸으로 접촉하는 좋은 것에 집착하는 마음을 제거(除去)하는 것이다.도를 행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이러한 것들을 멀리해야 한다.이와 같은 정욕(情慾)을 멀리하여 마음이 깨끗하고 고요해지는 것을 제일선이라 한다. 제일선에서는 선과 악이 다투는 가운데,선으로 악을 소멸(消滅)하여 악을 물리치고 선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이선(第二善)은 기쁜 마음이 고요히 끊어지고,저 악을 소멸하기 위해 머물렀던 선(善)에도 머물지 않는 것이다.기쁨(善)과 선함(善)두 마음이 모두 저절로 소멸하여 십악(十惡:가지가지 악한 일)이 일어나는 인연이 끊어지고,밖으로는 마음으로 들어오는 인연(因緣)을 없앤다...제삼선(第三善)은 마음을 견고하게 지켜서,선악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마음을 수미산처럼 안정(安定)되게 하는 것이다. ...선악을 모두 버려서 마음으로 선을 생각하지도 않고,악이 존재하지 않으면,마음속은 유리 구슬처럼 밝고 맑아진다...보살의 마음이 맑아지면 제사선(第四善)을 얻게 된다.   <육도집경>

 

반야(般若:지혜)

세존(부처님)이시여,보살이 '반야(般若)바라밀'을 향해 갈 때,색(色:물질과 형상)가운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受(느낌)想(생각)行(행위)識(분별의식)가운데 머물러서도 안 됩니다.왜냐하면 색 가운데 머물면 색행(色行:물질과 형상에만 집착되고 고착된 행위)을 짓게 되고,수상행식 가운데 머물게 되면,역시 수상행식(受想行識)을 짓기 때문입니다.만약 이와 같이 (色수상행식에 집착하여)작법(作法)을 행하면,'반야(知慧)바라밀'을 받을 수 없고,'반야 바라밀'을 구족(具足:넉넉하게 갖춤)할 수 없고,모든 것을 아는 지혜(一切智)를 성취할 수 없습니다.                                      <소품반야경>

 

제법(諸法:모든 것)은 무상(無常:항상 변화하여 한 상태에 머물지 않음)하기 때문에,사람의 수명(壽命)은 매우짧으며,항상 후세(後世)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누구나 태어나서 죽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따라서 영원한 실체로서의 자아(自我)는 없습니다.이러한 "무아(無我)의 실상(實像:실제의 모습)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은,욕심으로 가득 차서 보시할 줄 모르고,경에서 가르치는 도를 받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선(善)을 행한다고 해서 복(福)이 있는 것도 아니고,악(惡)을 행한다고 해서 무서운 재앙(災殃)이 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면서 방자(放恣)한 마음으로 쾌락(快樂)을 추구(追求)합니다.그러나 이 몸을 버리고 죽으면,업(業)에 의해 후세에 가서 태어나게 되므로,지혜로운 사람은 간탐하는 마음을 끊고,가난한 사람에게 보시를 행하는 등의 육바라밀(수행을 통하여 부처님의 경지에 이르도로 하는 여섯 가지 방편)을 실천하게 됩니다.                                                                                                 <육도집경>

 

유마경 요약

<유마경 일부분을 요약하였음>

병문안.

부처님께서 문수사리(文殊師利)존자에게 말씀하셨다."문수사리존자여,유마거사가 아프다 하니 병문안을 하고 오너라."문수사리존지는 부처님게 말씀하셨다."세존(世尊)이시여.그 성자(聖者)를 제가 위문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우마거사는 실상(實相)에 깊이 통달(通達)해 있어서,그 지혜와 방편은 이미 초월적인 경지에 이르렀습니다.그렇지만 부처님의 성지(聖旨)를 받앗으므로 그를 찾아가 병문안을 하겠습니다."이에 문수사리존자는 여러 보살(菩薩)들과 십대제자(十大弟子)들,여러 하늘사람(天人)들에 둘러싸여 그들과 함께 비야리성으로 향했다.

 

유마거사의 집에 도착하여 유마거사의 방으로 들어간 문수사리존자는,그 방안이 텅 비어서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고.그가 홀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이때 유마힐거사가 말하였다."잘 오셨습니다.문수사리존자이시여,오지 않는다는 모양(相)그대로 오셨고,만나지 않는다는 모양(相)그대로(우리들은)만났군요."문수사리존자가 말했다."말씀하신 그대로 입니다,유마거사(居士)님,만약 와 버렸다면 다시 올 수 없을 것이며,만약 돌아가 버렸다면 다시 갈 수는 없습니다.그것은 왔다고는 하지만 어디서 왔다는 것이 아니고,갔다고는 하지만 어디로 갔다는 것도 아닙니다.또 만났다고 하지만 만나야 할 아무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고 거사님,아픈 곳은 어떻습니가?병은 나아갑니까?부처님께서는 대단히 걱정하시면서 은근히 물으셨습니다.거사님,병은 무엇이 원인(原因)이 되어 일어났습니까?언제부터 일어났습니까?그리고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병(病)의 원인(原因)

유마거사가 말했다."어리석음과 탐욕(貪慾),분노(忿怒),때문에저의 병은 생겼습니다.모든 이웃과 생명(衆生)이 병들었기 때문에 나도 병들었습니다.만약,이웃과 생명(衆生)이 병이 없어지면,내병도 없어질 것입니다.왜냐하면 보살은 이웃과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만 생사(生死)의 세계에 들어가며,생사(生死)가 있는 곳에는 병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만약,모든 이웃과 생명이 병을 떠날 수 있다면 보살도 병에 걸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비유하면 어느 장자에게 외아들이 있어,그 아들이 병에 걸리게 되면 그 부모도(마음의)병이 들게 됩니다.이때 그 아들의 병이 나으면 부모도 또한 낫게 됩니다.보살도 마치 그와 같아서,모든 이웃과 생명(衆生)을 자기의 아이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衆生)이 병들면 보살도 병들고,이웃(衆生)의 병이 나으면 보살도 낫는 것입니다.그리고 이 병이 어떻게 일어났느냐고 말씀하셨는데,보살의 병은 대비(大悲)로 인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나서 빈 방의 이유에 대해서는 비유를 통하여 무분별공(無分別空:분별함이 없이 비어 있음)을 설하였다.

 

-병(病)의 규명-

문수사리존자가 말하였다."유마거사님,병든 보살은 어떻게 해서 그 마음을 다스리고 극복(克復)해야 합니까?"유마거사가 말하였다."병든보살은 이렇게 생각하면 좋을 것입니다.<지금 나의 이 병은 모두가 전생(前生)의 망상(妄想)이나 전도(顚倒)된 생각이나 여러 가지 번뇌(煩惱)에서 생긴 것이다.어떤 것도 실체적(實體的)인 존재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병에 걸리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왜냐하면 흙(地),물(水),불(火),바람(風)의 네 가지 원소(四大)가 잠시 화합(和合)한 것을 몸이라 가칭(假稱)하였을 뿐이다.그 네가지 원소에는 주인(主)이 되는 것이 따로 없기 때문에,몸에도 또한 진실한 자기자신(自我:자아)이 없다. 그리고 이 병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가 자기자신(自我)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자신(自我)에 집착을 일으켜서는 안된다.>"이미 이같이 병의 근본(根本)을 알면,자기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나 사람이 있다고 하는 생각도 없어집니다.그래서 존재(法)라는 생각을 일으켜,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입니다.다만,온(蘊),계(界),처(處)등 물질적 존재에 의하여 이 몸은 합성되어 있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몸이 생긴다 해도 물질적 존재(法)가 서로하여 의존하여 생기는 것일 뿐이며,없어진다 해도 물질적 존재(法)가 함께 없어지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물질적 존재는 서로간에 아는 일이 없으며.따라서 생길 때에 나는 생긴다고 말하지 않고,없어질 때도 나는 없어진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병든 보살이 나아가 그 존재의 모양(法相)을 멸하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이 모든 것이 물질적인 것(法)이라는 생각도 또한 뒤집힌 생각이다.이 뒤집힘이야말로 커다란 병(病)이다.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어떻게 하면 떠날 수 있는가.자기 자신(自我)과 내것(我所)이라는 집착을 떠나야 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자신(自我)과 내것(我所)이라는 것에서 떠날 수 있는가.이른바 상대(상대)하는 두 가지 존재(法)를 떠나야 한다.어떻게 하면 두 가지 존재(법)를 떠날 수 있는가.이른바 대내적(對內的),대외적(對外的)으로 상대하는 모든 존재(法)의 구별을 생각지 말고 ,그것이 평등하다는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평등하게 보는 것(平等觀)인가,자기자신(自我)과 완전한 깨달음(涅槃)은 모두 같다고 보아야 한다.왜냐하면 자기자신과 완전한 깨달음은 두 가지가 다 비어 있기(空)

때문이다.무엇에 의하여 비어 있다(空)하느냐 하면,자기자신도 완전한 깨달음도 말과 문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어 있는 (空)것이다.이와 같이 상대(相對)되는 두 존재에는 결정된 본성(本性)이 없다>이와 같이 평등(平等)하게 볼 수가 있다면,여러 가지 집착하는 병은 없어지는데 다만 비어 있음(空)에 집착하는 병만이 남습니다.그 비어 있음(空)의 병도 또한 비어 있을(空)뿐입니다.

 

-병의 극복(克復)

"이 병든 보살은 이미(자신은)괴로움과 즐거움 등을 느끼는 (感愛)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이웃(衆生)과 마찬가지로 느끼는 것을 즐깁니다.이웃(衆生)이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깨우치지 않는 한.(중생들과)괴로움과 즐거움 속에 있는 일을 버리고,개달음의 경지에 들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만약 그 몸이 고통을 느끼다면 삼악도(三惡道)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생각하여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킵니다.보살은 자기가 이미 병을 극복했기 때문에,다른 모든 이웃(衆生)의 병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다만 그 병을 제거할 뿐 진리(法)를 제거하는 것은 아닙니다.병의 근원을 끊어 없애기 위하여 이웃(衆生)을 바르게 이끕니다.그러면 무엇이 병원 근원(根源)인가 하면,반연(攀緣:속된 인연에 끌림)이 바로 그것입니다.마음이 대상에 집착하여 반연의 작용이 있게 되면,그것이 병원 근원이 됩니다.어디 반연하느냐 하면.삼계(三界)에 대해서입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서 작용하는 것을 끊을 수가 있느냐 하면,집착하지 않고 얻는 바가 없는 상태(無所得)이어야 합니다.

 

얻는 바가 없는 상태이면 반연하는 일이 없습니다.얻는 바가 없는 상태이면 반연하는 일이 없습니다.얻는 바가 없는 상태(無所有)란 무엇인가 하면,두 개의 대립된 견해(見解)를 떠나는 것입니다.두 개의 대립된 견해란 어떤 것인가 하면,그것은 내(內)와 외(外)를 구별하여 관찰하는 견해입니다.(대립된 견해를 떠나면)그것은 얻는 바가 없는 상태(無所得)인 것입니다.문수사리존자여,병든 보살이 마음을 극복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늙음(老),병(病),죽음(死)의 괴로움(苦)을 끊는 것이 보살의 깨달음(布施)입니다.만약 이렇게 할 수가 없다면,이미 닦고 다스려온 것도 지혜롭다 할 수 없고,무익(無益)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비유하면 원한이 맺힌 적에게 싸워 이긴다면 용감한 사람이라 부르듯이,자신과 이웃(自他)의 늙음(老),병고(病),죽음(死)을 모두 없앤 사람을 보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의 방편-

<병든 보살은 또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자기의 이병(病)이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듯이,이웃(衆生)의 병도 또한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볼 때,중생에 대하여 애착(애착)하는 마음에서 일어나 애착함에 기반을 둔 대비심(大悲心)이 일어난다면,바로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왜냐하면 보살은 밖으로부터 주어진 번뇌를 끊어 없애고 자비심(慈悲心)으로는 생사(生死)에 대하여 싫어하는 마음을 갖기 때문입니다. 만약,이 애착함의 자비심을 버릴 수 있다면,싫어하는 것도 없어지고,어디 태어나든지 자비심을 일으켜 애착함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태어나는 것에 속박(束縛)이 없고,이웃(衆生)을 위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며,속박에서 해방 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부처님이 설하신 말씀에 따르면,만약 자기에게 속박이 있다면 이웃 (衆生)의 속박을 해방시킬 수 없습니다.자기에게 속박이 없을 때에 이웃(衆生)의 속박을 푼다는 것은 도리에 맞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속박을 일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무엇을 속박이라 하고, 무엇을 해탈(解脫)이라 합니까? 선정(禪定)의 맛에 탐착하는 것이 보살의 속박이며.이웃(衆生)을 위해 방편(方便)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합니다.그리고 방편이 따르지 않는 지혜를 속박이라 하며,방편이 따른 지혜를 해탈이라고 합니다.지혜가 따르지 않는 방편은 속박이며,지혜가 따른 방편은 해탈입니다. 또 보살의 보살행(보살행)이란 무엇이겠습니까?모든 존재(法)의 궁극의 모습(相)은 청정하다는 것을 있으면서도,중생을 위해서 갖가지 청정한 불토(佛土:부처님의 세계인 극락정토)를 나타냅니다.이것이 보살행입니다.불도(佛道:를 얻어 법륜(法輪:을 굴리고 열반에 드는 일이 있더라도,중생을 위해서는 보살도(菩薩道:를 버리지 않습니다,이것이 보살행입니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금강경의 내용을 요약하였음>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한때 부처님께서 천이백오십인의 비구스님들과 함께 사위성(舍衛成)의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시었다.부처님께서는 이때 마을에 들어가시어 탁발(托鉢)하여 공양(供養)을 하시고 난 후,발을 씻고 자리에 앉으셨다.마침 그때 수보리장로(須菩提長老)도 같은 무리중에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의(上衣)를 한쪽 어깨에 걸치고,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해 합장 예배한 다음에 다음과 같이 말했다."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여,부처님(如來)은 최상의 방법으로 보살(菩薩)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지켜 주시며,최상의 방법으로 보살들에게 그 가르침을 지니고 전파할 것을 위촉(委囑)하시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존귀하신 분이시여,남자나 여자나 이미 보살도(菩薩道)에 뜻을 두었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며,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降伏:조복)시켜야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뭇 보살들은 이와같이 그 (자신의)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존재(存在)하는 모든 생명(生命)들을 내가 모두 열반(涅槃)에 들게 하리라.이리하여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수한 중생을 열반(涅槃)에 들도록 하였다 할지라도,실은 그들 생명 가운데서 어느 누구도 열반한 생명은 없다>고.왜냐하면 수보리야,만약 어떤 보살이<나(我)라는 개념>,<중생이라는 개념>,<영혼이라는 개념>.<개인라는 개념>을 일으킨다면, 그는 진정한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다.수보리야,보살은 보시(布施)를 행할 때 물질,소리,향, 맛,느낌과 뜻에 얽매이지 않고 보시를 하여야 한다.보살이 모양에 머물지 않고 보시한다면,그 복덕(福德)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다. 수보리야,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냐? 부처님은 서른 두 가지 특징적 모양이라는 훌륭한 형상(形相)을 구비하고 있다고 하는데,부처님을 그러한 특직정 모양을 통해서 볼 수 있겠느냐?"

 

수보리는 말했다."세존이시여,그렇지 않습니다.몸의 모양을 통해서 부처님을 볼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몸의 모양이 곧 모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수보리야,모양에 집착하면 그만큼 허망(虛妄)하며,모양아님을 통해 부처님을 보아야 한다.수보리 장로는 다시 부처님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세존이시여,미래세상(未來世)에 이들 경(經)의 글귀를 듣고 진실이라고 하는 생각을 일으키는 중생이 있겠습니까?"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수보리야,후호백세가 되었을 때,이들 경(經)의 글귀가 이와 같은 형태로 설해졌다고 한다면,덕(德)을 갖추고 계(戒)를 갖추고 지혜를 갖춘 보살들이 있어서,이것을 진실로 받아들일 것임에 틀림없다.실로 이 보살들은 <나(我)라는 개념><중생(衆生)이라는 개념><영혼이라는 개념><개인이라는 개념>등의 모양에 매어 있지 않다.또 진리의 모양이 없다는 것에도 매어 있지 않는다.

 

수보리야,네 뜻은 어떠하느냐? 아라한(阿羅漢:깨달음을 얻은 스님)<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노라>고 생각을 해서 되겠느냐?"수보리가 사뢰었다."아니되옵니다.부처님이시여,왜냐하면 실로 아라한이라고 이름 할 수 있는 이치가 없기 때문입니다.만약 아란한이<나는 아라한의 도를 얻었다고>고 한다면,그것은 곧(그 아라한이라는 경지를 얻었다는 스님이)<나(我)라는 개념><중생이라는 개념><영혼이라는 개념><개인이라는 개념>등의 모양에 집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수보리야,뭇 보살은 반드시 이와 같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내야한다. 마땅히 물질이나 소리,향기,맛,느낌 뜻에 매이지 않고 그 마음을 낼지어다.수보리야,너는 어찌 생각하는냐? 서른두 가지 부처님 외모상의 특징적 모양을,위대한 사람만이 구비(具備)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그러한 형상(形相)에 의해서 부처님을 볼 수 있겠느냐?"수보리장로는 대답했다."세존이시여,그렇지 않습니다.서른두 가지 부처님의 외모상 특징적 모양에 의해서 우리들은 부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존이시여,실로 부처님이 말슴하신 서른두 가지 모양은 곧 모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래야 비로서 서른 두가지 모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이에 부처님게서 말씀하셨다."수보리야,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모양을 떠나서,큰 깨달음의 마음을 내야 한다,물질,소리, 향기, 맛,느낌,뜻에 머물러 마음을 내지 말라.마땅히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낼지니라,모양들이 곧(참된)모양이 아닌 것이니라.수많은 부처님 나라에 살고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부처님은 모두 다 안다. 어찌하여 그러한가? 부처님이 말슴하신 갖가지 마음이 모두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그래서 비로소 마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왜인가?수보리야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기 대문이다.

부처님게서는 다음의 게송(偈頌)으로 말씀하시었다.

 

모양(形相)을 가지고 부처님을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부처님을 찾는 사람은 그릇된 노력을 할 뿐 참 부처님을 볼 수 없다.인연(因緣)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는 마치 환영(幻影)이나 이슬이나 물거품이나 꿈이나 번개와 같은 것이라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부처님께서는 이상과 같이 말씀하셨다.수보리장로(須菩提長老)와 그자리에 모인 비구(比丘),비구니(比丘尼),우바새(優婆塞),우바이(優婆夷)들과 보살(菩薩)들과 신(神)들,인간(人間),아수라(阿修羅).건달바(乾達婆)등은 환희하여 세존게서 말슴하신 바를 듣고,받아들이고,받들어 행하였다.

 

-화엄경요약-

<십행품과 보원행원품 등을 뽑아서 정리하였음>

부처님을 찬탄하는 노래

어느 때 부처님은 마가다국의 적멸도량(寂滅道場)보리수 아래에 계셨다.부처님이 처음으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었 때,

대지(大地)는 발게게 빛나고 여러 가지 보석과 꽃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향기가 넘치고 있었다.부처님 둘레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싸여 있고,그 위에 금,은,유리,산호,파려,자거,마노 등 진귀한 보석들이 박혀있었다.나뭇가지와 잎새마다 찬란한 빛을 발해 눈이 부셨다.이와 같은 풍경은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나타난 것이다.부처님은 사자좌(獅子座)에 앉아 최상(最上)의 깨달음을 깨달았으며,그 지혜의 빛은 모든 중생의 마음속에 들어가고,미묘한 깨달음의 소리는 온 세상 구석구석가지 메아리쳤다.그것은 마치 허공을 지나가듯 무엇에나 걸림이 없었다.도 지혜의 빛으로 어둠을 사르고 무수한 불국토(佛國土)를 나타내어,여러 가지 방편으로 중생을 교화하셨다.그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보살과 하늘신들이 각각 부처님의 신통력을 받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찬탄하였다.

 

요업광명천왕(樂業光明天王)은 이렇게 찬탄하였다."모든 부처님의 경지(境地)는 너무 깊어 상상(想像)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끝없는 중생(衆生)을 교화(敎化)하여 깨달음의 길러 가게 하십니다.모든 사물의 참된 모습은 고요하게 통일(統一)되어 있고.그 바탕은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습니다.여래(부처님)는 신통력으로 한 개의 팀 속에서도,중생을 위해 최상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여래(如來)는 진리의 깊은 뜻을 살피고,중생의 능력(能力)에 따라 불멸(不滅)의 가르침을 비처럼 내리십니다.그 때문에 많은 진리의 문이 열리고,고요하게 통일되어 있는 평등하고 진실한 세게에 중생을 이끌어 들이십니다."비사문야챠왕(毘沙門夜叉王)은 다음과 같이 찬탄했다."중생은 죄악(罪惡)이 깊고 무거워,부처님을 뵙고 섬길 수 없어,미혹(어리석음)의 세계로 흘러 다니면서 갖은 괴로움을 겪습니다.부처님게서는 이와 같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세상에 나오셨습니다.

 

부처님은 시방세계 중생 앞에 출현(出現)하시어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십니다.부처님은 방편으로 중생의 무거운 죄(죄0와 악업의 장애(障碍)를 벗기고,바른 법에 편히 머물게 하십니다.부처님은 일찍이 오랜 세월 동안 수행을 쌓을 때, 시방세게의 모든 부처님을 찬탄(讚嘆)하셨습니다.그 때문에 높고 거룩한 부처님의 이름이 시방세계에 두루 울려 퍼집니다.부처님의 지혜는 허공(虛空)처럼 끝이 없고,그 진리의 몸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십니다."이밖에도 수많은 천신(天神)과 보살들이 번갈아 가며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입고,부처님의 덕(德)을 찬탄해 마쳤을 때 연화장(蓮華藏)세계는 여러가지로 진동하였다.

 

-여래는 복밭-

문수보살이 목수(目首)보살에게 물었다."여래(부처님)의 복밭(복을 기르는 밭)은 하나인데 어째서 중생이 받는 과보는 다릅니가?중생들 가운데는 부자(富者)도 있고 가난한자도 있으며,지혜가 많은 이도 있고 적은 이도 있습니다.그러나 여래는 평등해서 가깝고 먼 차별을 두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목수 보살이 대답했다."대지(大地)는 하나이어서 차별(差別)이 없지만,온갖 싹을 트게합니다.부처님의 복밭도 그와 같습니다.같은 물이라도 그릇에 다라 그 모양이 달라지듯이,부처님의 복밭도 중생의 따라 집니다.변재천(辯才天:뛰어난 언변으로 중생을 기쁘게 하는 하늘신)이 사람들을 기브게 하듯이 부처님의 복밭도 중생들을 길러 줍니다.해가 드면 어둠이 사라지듯 부처님의 복밭도 시방세계를 두루 비춥니다.

 

-젖은 나무는 타지 않는다-

문수보살이 진수(進首)보살에게 물었다."부처님의 가르침은 한결같은데,이 가르침을 듣는 중생들은 어째서 다같이 (서로 다름이 없이)번뇌를 끊을 수 없습니까?"진수보살은 대답했다."중생들 가운데는 빨리 해탈(解脫: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와 깨달음을 얻음)하는 사람도 있지만,빨리 해탈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약,어리석음을 없애 해탈하려고 한다면,굳은 결심으로 용맹(勇猛),정진(精進)해야합니다.나무가 젖어 있으면 약한 불은 꺼지고 말듯이,가르침을 들었어도

게으른 자는 그와 같습니다.불은 지필 때에 태우다 말다 하면 마침내 꺼지고 말듯이,게으른 자도 그와 같습니다.눈을 감고서는 달빛을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듯이,게으른 자가 법을 구하는 것도 그와 같습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문수보살이 법수(法首)보살에게 물었다."중생들 가운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는 번뇌를 끊지 못하는 이가 있습니다.진리를 들으면서도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법수보살이 대답했다."듣는 것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 수 없습니다.이것이 구도(求道)의 진실한 모습입니다.맛있는 음식을 보고 먹지 않고 굶어 죽는 사람이 있듯이,듣기만 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습니다.백 가지약을 잘 알고 있는 의사도 병에 걸려 낫지 못하듯이,듣기만 하는 사람들도 그와 같습니다.가난한 사람이 밤낮으로 그렇습니다.장님이 그림을 그려 남들에게는 보일지라도 자기자신은 볼수 없듯이,듣기만 하는 사람도 그와 같습니다.

 

-중생의 성질에 맞는 법-

문수보살이 지수(智首)보살에게 물엇다."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지혜를 첫 번째로 꼽는데 부처님게서는 어째서 육바라밀(六波羅蜜:베플음,계율을 지킴,욕됨을 참음,정진함,마음의 집중,지혜)과 사무량심(四無量心:사랑함,연민함,기뻐함,흔들림 없고,지우침없는 평등하고 평정한 마음)을 찬탄하십니까?이러한 법으로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지수보살은 대답했다."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여래(부처님)가 한 가지 법만으로는 최상의 개달음을 성취할 수 없습니다.여래는 중생의 성품(性品)을 잘알아 거기에 알맞은 가르침을 설하십니다.탐욕(貪慾)이 많은 사람에게는 보시를 권장(勸奬)하고,규칙(規則)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계율 갖기를 권장하며,화를 잘 내는 사람에게는 인욕을 게으른 사람에게는 정진을,마음이 흩어지기 쉬운 사람에게는 선정(禪定)을 ,어리석은 사람에게는 지혜를 권장합니다.그리고 인정이 없는 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을 권장하고,남을 해치는 사람에게는 가엾이 여김을,마음에 근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쁨을,사랑하고 미워하는 생각이 강한 사람에게는 평등한 마음을 권유하신 것입니다.이와 같이 평소에 꾸준히 나아간다면 마침내 모든 진리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경지는 허공과 같다-

여러 보살들이 문수보살에게 말했다."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을 각기 말했습니다.이제는 보살의 깊은 지혜로 부처님의 경지는 어떤 것이고,그 원인(原因)은 무엇이며,어떻게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지.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경지(境地)를 알 수 있는 지도 말씀해 주십시오."문수보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부처님의 지혜는 과거,현재.미래의 걸쳐 막힘이 없고,그 경지는 마치 허공과 같습니다.부처님의 경지는 그 자성(自性)이 참으로 청정(淸淨)하여,생각이나 분별(分別)로는 알 수 없습니다.부처님의 경지는 업(業)도 아니고,번뇌도 아니며,고요해서 걸릴데도 없습니다.그러나 평등하고 한결같이 중생의 세계에서 작용합니다.모든 중생의 마음은 과거,현재,미래 속에 있고,부처님은 한 생각에 중생의 마음을 샅샅이 궤뚫어 보고 계십니다."

 

-화엄경 보살의 열 가지 행-

(화엄경의 십행품을 요약)

공덕림(功德林)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아 번뇌를 물리치는 삼매(三昧)에 드니,시방세계에 계신 무수한 부처님들이 공덕림보살 앞에 나타나 말씀하셨다."착하다.그대가 번뇌(煩惱)를 물리치는 삼매에 들었구나,이것은 시방세계의 여래(如來:부처님이 자기자신을 지칭할 때 쓰는 말)들이 그대에게 은혜를 주려는 것이다.여래가 예전부터 세운 서원(誓願)의 힘과 위신력과 모든 보살의 선행(善行)의 힘이,그대로 하여금 이 삼매에 들어 들어 진리를 설하게 하려는 것이다.보살이 열 가지 행(行)을 일으키는 것은,여래(부처님)의 지혜를 늘리기 위해서이고,진리의 세계(法界)에 깊이 들게 하려는 것이며.중생의 세계(衆生界)를 분명히 알게 하려는 것이다.들어가는 데에 걸림이 없게 하려는 것이며,하는 일에 장애를 없애기 위해서이다.또 한량없는 방편을 얻게 하기 위해서이고,온갖 지혜의 성질을 거두어 지니려는 것이다.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려는 것이고,모든 근기(根機)를 알게 하려는 것이며,온갖 진리를 가지고 말하려는 것이다.그대는 위신력을 받아 이 진리를 설하라."이때 모든 여래(부처님)는 공덕림보살에게 걸림 없는 지혜,다르지 않은 지혜,허물이 없는 지혜,한량없는 지혜,이길 이 없는 지혜,게으름 없는 지혜,빼앗기지 않는 지혜를 주었다.이 삼매의 힘은 그와 같은 지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시방세계의 여래가 각기 오른손으로 공덕림보살의 이마를 쓰다듬자 그는 삼매에서 나와 모든 보살에게 진리를 진리를 설했다."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행(行)은 넓고 커서,진리의 세계처럼 헤아릴 수 없고 허공계처럼 끝이 없습니다.왜냐하면 보살은 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 행을 배우기 때문입니다.보살에게는 삼세(三世:과거,현재,미래)의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열 가지 행이 있습니다.그것은 즐거운 행,이롭게 하는 행,어기지 않는 행,굽히지 않는 행.어리석음과 산란을 떠나는 행,법을 잘 설하는 행, 진실한 행입니다."

 

-즐거운 행-

보시(널리 베풀음)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즐거운 행(行)이란 무엇입니까? 보살은 평등(平等)한 마음으로 자기가 가진 물건을 남김 없이 모든 중생에게 널리 베풉니다.베풀고 나서 뉘우치나 아가워하거나 대가(代價)를 바라거나 명예(名譽)를 구하거나 이익(利益)을 바라지 않습니다.다만 모든 중생을 구제(救濟)하고 이롭게 할 뿐입니다.모든 부처님께서 쌓으신 행(行)을 배우고 생각하고 좋아하며,몸소 실천(實踐)하고 남에게 말하며,중생들로 하여금 괴로움을 떠나서,즐거움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가난한 이웃이 와서 빌면,보살은 곧 보시하여 그를 즐겁고 만족하게 합니다.한량없이 많은 중생이 와서 구걸(求乞)하더라도,보살은 조금도 싫어하거나 귀찮게 여기지 않고,더욱 자비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 이 중생들은 내 복밭이고 선지식이다.찾지도 않고 청(請)하지도 않았는데,몸소 와서 나를  바른 진리에 들게 한다.나는 이와  같이 배우고 닦아 모든 중생의 마음을 어기지 않으리라."또 이렇게 발원합니다."내 보시를 받은  중생들은 최상의 깨달음을 얻고, 평등한 지혜를 가지며,바른 진리(법)를 갖추어,널리 선행(善行)을 하다가 열반에 들어지이다.만약,한 중생이라도 마음에 만족(滿足)하지 않는다면,나는 결코 최상의 깨달음을 얻지 않으리라."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이롭게 하면서도 나라는 생각,중생이라는 생각,목숨이라는 생각,베푸는 자라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또 자신의 몸도 보지 않고,업도 과보도 그 결과도 보지 않습니다.이것이 보살의 즐거운 행입니다."

 

-이롭게 하는 행-

청정계율(이웃을 해롭게 하지 않음)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이롭게 하는 행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계율을 청정하게 가지므로,어떠한 감각의 대상에도 집착하지 않고,중생들을 위해서도 그와 같이 말합니다.권세(權勢)나 문벌(門閥)이나 부귀(富貴)같은 것에 조금도 집착함이 없이,청정한 계율을 굳게 가지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나는  모든 얽힘과 소박과 탐욕과 시끄러움을 버리고,부처님게서 찬탄하신 평등한 정법(正法)을 얻으리라."보살이 이와 같이 청정한 계율을 가질 때,마군(魔軍)의 무리들이 아름다운 천상(天上)미녀(美女)들을 데리고 와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유혹(誘惑)할지라도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오욕(五慾:감각으로 인해 생기는 다섯 가지 욕심)은 도(道)를 방해(妨害)하는 것이다.여기에 빠지면 바른 깨달음을 이룰 수없다.보살은 한 순간만이라도 탐욕을 내지 않으면 그 청정한 마음이 부처님과 같습니다.

 

보살은 탐욕으로 인해 한 중생이라도 해롭게 하는 일이 없습니다.차라리 자기 목숨을 버릴지언정 중생을 해롭게 하는일은 하지 않습니다.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중생은 오랜 세월 동안 오욕(五慾)을 생각하고,오욕을 탐하고 거기에 집착하여 물들고 거기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른다.내가 이제 이 마군(魔軍)과 천상의 미녀와 모든 중생들을 청정한 계율에 머물게 하리라.그래서 밝은 지헤에서 물러나지 않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하리라.그래서 밝은 지혜에서 물러나지 않는 최상의 깨달음을 얻게 하리라,이것이 내가 할 일이고 모든 부처님께서도 그와 같이 행하셨다.여래(如來)의 보리(깨달음)를 얻어서,아직 제도(濟度)받지 못한 중생을 제도하고,해탈하지 못한 중생을 해탈케 하며,고요하지 못한 중생을 고요하게 하고 청정하지 못한 중생을 청정케 하며,열반에 들지 못한 중생을 열반에 들게 할 것이다."이것이 보살의 이롭게 하는 행입니다."

 

-어기지 않는 행-

인내(어떤 욕됨,고난,고통이라 할지라도 능히 참고 견딤)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어기지 않는 행(行)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항상 참고 견디는 법을 쌓아,겸손(謙遜)하고 공경(恭敬)하여 남을 해치지 않으며,탐하거나 집착(執着)하지 않고 명예(名譽)와 이익(利益)도 구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합니다."내가 중생(衆生)에게 진리를 설하여 나쁜 짓을 못하게 하리라.즉,중생(衆生)들의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교만,질투,아첨하는 마음을 끊어 부드럽고 화평하여 참고 견디는 데에 항상 머물게 하리라"보살이 이와 같이 참고 견디는 법을 성취하면,설사 무수한 중생이 입을 모아 헐뜯고 비방하고 흉기로 위협(威脅)할지라도 그는 항상 이렇게 생각합니다."내가 이만한 고통으로 마음이 흔들린다면.자신을 이기지 못하고,자신을 지키지  못하고,스스로 고요하지 못하고,스스로 집착하게 될 것이니,어떻게 남의 마음을 청정(淸淨)하게 할 수 잇을 것인가."

 

보살은 또 다음과 같이 생각합니다."내가 끝없는 옛적부터 생사(生死)의 바다를 헤매면서,갖은 고통을 받았다.그럴 수록 정신을 가다듬어 청정해지고 바른 법(眞理)에 편히 머물러 중생들에게 이런 진리를 얻게 하리라.사실 이 몸은 공(空:인연에 의해서 생성(生成)되고 변화하여,그 안에 어떤 영원한 실체가 없는 상태)한 것이므로,나도 없고 내 것도 없다.온갖 괴로움과 즐거움도 그 실체가 없다.모든 것이 공한 것임을 내가 알고 남에게 널리 말하리라.내가 지금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참고 견디어야 한다.그것은 중생을 염려하기 때문이며,스스로 깨닫고 중생들을 깨닫게 하려는 때문이며,중생들이 물러나지 않고 여래(부처님)의 도(道)에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인 것이기 때문이다."이것이 보살의 어기지 않는 행입니다."

 

-굽히지 않는 행-

정진(끊임없이 노력 정진함)

"여러 불들이여,보살의 굽히지 않는 행(行)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온 갖 정진(精進)을 수행(修行)합니다.모든 번뇌를 끊기 위해 정진하고,나쁜 버릇을 없애기 위해 정진합니다.모든 중생이 생(生死)와 번뇌와 희망(希望)과 마음의 상태를 알기 위해 정진합니다.여래(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을 알기 위해 정진하고,청정하고 평등한 진리를 알기 위해정진하며,여래의 끔이 없고 헤아릴 수 없는 지혜를 알기 위해 정진합니다.보살이 이와 같은 정진을 완성(完城)할 때,사람들은 물을 것입니다."당신은 무수한 세계의 낱낱 중생들을 위해 무량겁을 두고 지옥(地獄)의 고통(苦痛)을 받으면서도,그 중생들응 열반에 들게 하겠습니까?또 수없는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여 부처님을 뵈온 인연으로 한없이 많은 중생들이 여러 가지 즐거움을 누리어도,당신은 그때까지 지옥의 고통을 면하지 않고 있다가.그들이 모두 열반에 든 뒤에라야 비로소 깨달음을 얻겠다고 하겠습니까?.

 

보살은 이렇게 대답합니다."어떠한 지옥의 고통이라도 중생을 위해서라면 달게 받겠습니다.또 어떤 사람이 물을 것입니다."이를테면 당신이 한개의 털로 무수한 많은 큰 바닷물울 찍어내어,바다가 다하게 하고,무수한 세계를 부수어 티끌을 만듭니다.그 물방울과 그 티끌을 낱낱이 세어 그 수효만큼의 오랜 세월을 두고 지옥의 고통을 받을지라도,그 마음이 변치 않겠습니까? 보살은 이와 같은 질문을 받을지라도 조금도 후회(後悔)하는 생각 없이,더욱 기뻐하고 스스로 감사하면서 이렇게"생각합니다."내 힘으로 저 중생들을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리라.보살이 이렇게 행한 방편으로 모든 중생들에게 열반(涅槃)을 얻게 합니다.이것이 보살의 굽히지 않는 행입니다."

 

-어리석음과 산란을 떠나는 행-

평정(칭찬과 비난,이익과 손해 등의 어떤 상황 아래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태도로 평정한 마음을 지님)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어리석음과 산란(散亂)을 떠나는 행(行)이란 무엇입니까?이 보살은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이 흩어지지 않고,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 동안 바른 가르침을 들어왔습니다.보살은 바른 가르침을 들으면서,아직 거기에서 물러난 일이 없습니다.왜냐하면 보살이 수행을 쌓을 때 한 번이라도 중생의 삼매를 흐트려 놓거나 바른 가르침과 지혜를 깨뜨리지 안았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남에게서 비방(誹謗)을 듣거나 칭찬(稱讚)을 받을지라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선정도 흔들리지 않습니다.보살은 선정 속에서 모든 음성의 모양을 보고 그 본성을 압니다.남에게서 어떤한 소리를 들을지라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일이 없습니다.보살은 모든 소리는 그 실체가 없고 차별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보살은 행동과 말과 생각이 항상 고요하므로 진리에서 물러나지 않습니다.선정 속에 편히 머물고 지혜가 깊어지고 모든 소리가 떠난 삼매 속에서 자비심을 기릅니다.

 

생각생각마다 한량없는 삼매를 얻어 마침내는 일체지(一切智: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갖추게 됩니다.보살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악담(惡談)을 들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내가 모든 중생들을 청정한 생각에 머물게 하여 지혜에서 물러나지 않고 열반에 들게 하리라."이것이 보살의 어리석음과 산란(散亂)을 떠나는 행입니다."

 

- 잘 나타나는 행-

이웃의 덕(德)을 길러줌(이웃을 덕으로 이끄는 일)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잘 나타나는 행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행동과 말과 생각이 청정하여,얻을 것 없는 데에 머물러서,얻을 수 없는 행동과 말과 생각을 보입니다.행동과 말과 생각의 삼업(三業)이 모두 없는 것인 줄 앎으로 얽메임이 없으며,온갖 나타내 보이는 것에 본성(本性)도 없고 의지(依支)함도 없습니다.보살은 이와 같이 진리의 깊은 뜻을 알며,세간(世間)이 고요하고 세간법(世間法:세속의 법과 이치)과 출세간법(出世間法:출가 수행자의 법과 이치, 진리)이 서로 다르지도 섞이지도 않고,또 차별(差別)이 없음을 압니다.보살은 과거,현재,미래의 평등한 진리(法)에 머물러 보리심(깨달음의 마음,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고,중생을 교화(敎化)하는 마음이 물러나지 않으며,큰 자비심을 길러 모든 중생을 구제(救濟)하겠다는 원(願)을 세우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중생(衆生)의 덕(德)을 완성(完成)시키지 않으면,누가 완성시켜 줄 것인가?내가 중생의 번뇌(煩惱)를 없애지 않으면,누가 없애 줄 것인가?내가 중생을 깨우치지 않으면,누가 깨우쳐 줄 것인가?내가 중생을 청정케 할 것인가? 그것은 마땅히 내가 할 일이다." 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중생의 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어떻게 나만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것인가? 나는 먼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무량겁을 두고 보살행을 쌓아 중생의 덕을 완성시키리라."보살이 이러한 행(行)에 머물러 있을 때,하늘신과 수행자와 바라문이 이 보살을 보고 공경(恭敬)하고 공양(供養:음식 등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함)하거나,잠깐이라도 그 가르침을 듣고 마음으로 생각하면,반드시 최상의 깨달음을 얻을 것입니다.이것이 보살의 장 나타내는 행입니다."

 

-얻기 어려운 행-

원력<願力:보살의 서원(誓願)>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얻기 어려운 행(行)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항상부처님의 수승(秀乘:뛰어난)한 가르침을 좋아하고,오로지 최상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잠시도 보살의 큰 원을 버리지 않습니다.보살은 한량없는 세월을 두고 보살도를 닦아 왔습니다.보살은 이 얻기 어려운 행에 머물러 생각생각마다 끝없는 생사의 고통을 돌이켜 보살의 큰 원을 버리지 않습니다.보살은 한 중생을 무시하고 많은 중생에게 집착하지 않으며,또한 많은 중생을 무시하고 한 중생에게 집착하지도 않습니다.왜냐하면 중생계(衆生界:생명의 세계)와 법계(法界:진리의 세계)둘이 아닌줄 알기 때문입니다.보살이 쌓는 공덕(功德)은 끝이 없으며,중생을 교화(敎化)하여 구제(救濟)하는 일도 끝이 없습니다.보살은 이와 같이 얻기 어려운 마음을 성취하여,항상 보살행을 쌓고,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영원히 길을 떠나,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에 편안히 머물게 합니다.그리고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생들은 은혜를 모르고 원수처럼 서로 헤치며,삿된 소견에 집착하여 어리석음에 빠져 갈길 몰라 헤매고 있다.어리석어서 탐욕과 애착과 온갖 번뇌에 사로잡혀 헤매고 있다.만약 그들이 은혜를 알고 지혜롭고 또 선지식(먼저 알고 잘 가르쳐 주는 스승)이 세상에 가득하다면,나는 결코 보살행을 닦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위해 보살행을 닥지 않을 수없다."이것이 보살의 얻기 어려운 행입니다."

 

-집착 없는 행-

무집착(無執着)(선행을 하되 선행을 한다는 생각이 없다.세상에 함께 있으되 세상을 초월함)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집착(執着)없는 행(行)이란 무엇입니가?보살은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한생각 중에 무수한 부처님의 세게를 생각하고,한없이 많은 부처님의 처소(處所)에 나아가 예배(禮拜)하고 공양(供養)합니다.보살은 부처님의 광명(光明)을 보기나 설법(說法)을 듣더라도 집착이 없으며,시방세계와 부처님과 보살과 모인 대중에게도 집착이 없습니다.부처님의 설법을 듣고는 기뻐하며,서원(誓願)과 힘이 커서 보살행을 하면서도 부처님의 법에 집착이 없습니다. 보살은 부정(不淨)한 세계를 보고도 미워하는 생각이 없습니다.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것을 부처님의 법과 같이 보기 때문입니다. 즉,모든 것은  청정(淸淨)하지도 부정(不淨)하지도 않으며,어둠도 밝음도 아니고,진실도 거짓도 아니며,편안함도 험난함도 아니고,바른 길도 그릇된 길도 아닙니다.보살은 이와 같이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 중생을 교화하여도,중생에게 집착하지 않고,삼매에 들어가 머물러도 삼매에 집착함이 없습니다.

 

보살은중생(衆生)이 온갖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것을 보면,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 이렇게 생각합니다."나는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을 위해,그들과 함게 무량겁(無量劫)을 지내면서,잠깐 동안이라도 [나]라는 생각과 [내것]이란 생각을 내지 않습니다.몸에 집착하지 않고,진리(法)에 집착하지 않으며,생각과 소원(所願)과 삼매(三昧)와 고요한 선정(禪定)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중생을 교화(敎化)하여 그 덕(德)을 성취시키는 데에도 집착하지 않고,진리의 세게에 들어가는 데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왜냐하면 보살은 다음과 같이 보기 때문입니다.즉,모든 세계는 환상(幻像)과 같고,부처님은 그림자 같으며,보살행은 꿈과 같고,부처님의 설법은 메아리와 같다고,보살은 모든 것이 무아(無我:변하지 않는 영원한 실체가 없음)라고 생각하고,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을 일으켜,모든 중생을 구제하면서도,그 일에 물들지 않습니다.세상을 초월해 있으면서도 또한 세상에 따르고 있습니다.이것이 보살의 집착 없는 행입니다.

 

-진리를 잘 말하는 행-

훌륭한 설법(중생의 근기와 처지에 알맞게 중생이 잘 알아듣도록 가르침)

 

"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이 진리를 잘 말하는 행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모든 중생을 위해 맑은 진리의 연못이 되어,바른 가르침을 지키고,부처님의 씨가 끊이지 않게 합니다.보살은 중생의 요구에 따라,또 그 능력에 맞도록 가르침을 설하고,말한마디 한마디에 무궁무진한 뜻이 들어 있어서,듣는 사람을 기쁘게 합니다.가령 여러 가지 업보(業報)로 된 무수한 중생들이 한 곳에 모여 있어,그들의 말이 각기 다르고 묻는 내용이 다를지라도,보살은 한생각에 모두 알아듣고,하나의 진리로 그들의 의심을 풀어 주고 눈을 뜨게 합니다.이대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한 터럭 끝에 순간(瞬間)마다 무수한 중생이 와서 모이고,이와 같이 매순간마다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모일지라도,중생은 다할 수가 없다.그 중생의 말은 서로 다르고 묻는 내용도 저마다 다를 것이다.그러나 나는 그와 같은 중생의 문제를 다 들어주고 마음에 조금도 두려함이 없이,한마디 말로써 의심의 그물을 끊어 그들을 기쁘게 해주리라. 

 

보살의 설법은 진실하며,한마디 한마디마다 깊은 지혜가 들어 있고,그 지혜의 빛은 모든 세계를 비추어 중생의 공덕(功德)을 완성시킵니다.보살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말하는 행에 머물러,스스로 청정하고 집착이 없는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합니다. 보살은 모든 중생의 집이 됩니다.왜냐하면 선(善)한 능력을 길러주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의지할 곳이 됩니다.중생을 편안한 세계에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길잡이가 됩니다.중생에게 바른 길에 이르는 문을 열어 보이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스승이 됩니다.중생을 진실한 가르침에 들게 하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등불이 됩니다.중생에게 그들이 지은 업보를 환히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밝은 지혜가 됩니다.중생에게 심오(深奧)한 진리를 얻게 하기 때문입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빛이 됩니다.중생에게 여래의 걸림 없는 능력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이것이 보살의 법을 잘 말하는 행입니다.보살이 이 행에 머무르면,모든 중생을 위해 맑은 진리의 연못이 됩니다.보살은 깊고 미묘한 진리의 근원(根源)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행-

부처님과 같은 공덕 성취하였어도,중생(衆生)제도(濟度)를 위해 부처님 되는 것을 뒤로 미룸.

 

"여러불자들이여,보살의 진실한 행이란 무엇입니까?보살은 진실하고 참된 말을 성취하여 말한 대로 행동하고,행동하는 대로 설법합니다.보살은 삼세(과거,현재,미래)부처님의 진실한 말을 배우고,삼세 부처님의 본선(本性)에 들어가,삼세 부처님의 본성(本性)에 들어가,삼세 부처님과 똑같은 공덕(功德)을 갖추고 있습니다.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끝없는 고통 속에 있는 모든 중생들은 내가 구제하리라.그들을 구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성불하겠다는 것은 내 원이 아니다.모든 중생들에게 최상의 깨달음과 열반을 얻게 한 뒤네 성불하겠다.중생이 내게 보리심을 내게 한 것이 아니고,내 스스로 보리심을 내어 끝없는 중생들에게 온갖 지혜를 얻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보살은 원래의 서원(誓願)을 버리지 않으므로,최상의 지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보살은 모든 중생의 요구에 맞도록 교화하고,본래의 서원에 따라 중생의 요구를 만족시켜 두루 청정케 합니다.보살은 생각마다 시방세계(온 세상)에 다니고,생각마다 무수한 부처님의 세상에 이릅니다.

 

보살은 또 부처님의 걸림 없는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 마음은 온세계나 허공의 세게와 같고,그 몸은 한량이 없어 중생의 요구대로 두룰 나타냅니다.보살은 중생의 여러 가지 생각과 욕망과 업보를 알고 그 근기에 맞도록 몸을 나타내어 중생의 고뇌를 덜어 줍니다.보살은 대비심에 머물러 심오한 진리를 수행하며,적멸(寂滅)의 세계에 드납듭니다.여래(부처님)의 능력을 얻어 ,서로 의지하고 관계된 진리의세계에 걸림 없이 들어가고,여래의 해탈을 성취합니다.생사의 소용돌이를 건너 지혜의 바다에 들어가 모든 중생을 위해 항상 보살행을 쌓습니다.이것이 보살의 진실한 행입니다."이때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시방세계가 크게 진동하고 하늘에서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내렸다.눈부신 광명(光明)이 끝없는 세계를 비치고 천상(天上)의 음악(音樂)이 은은히 울렸다.시방세게의 무수한 보살들이 모여들어서 저마다 공덕림보살을 찬탄했다.

 

-보살의 회향-

그강당(金剛幢)보살이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을 받고 밝은 지혜삼매에서 나와 보살들에게 진리를 설했다."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서원(誓願)이,진리의 세계에 충만하여,모든 중생을 널리 구제합니다.보살은 이 서원을 세워 과거,현재,미래 부처님의 회향(回向:자신이 지은 공덕을 중생에게 나누어 줌)을 배웁니다. 보살은 보시(布施:베풀음)지계(持戒:계율을 지킴)인욕(忍辱),정진(精進:쉬임없이 노력함),선정(禪定:마음을 하나로 통일함)지혜(智慧)의 육바라밀을 수행할 때 이렇게 생각합니다."이 선근(善根)으로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며,지옥,아귀(배고픈 귀신),축생(동물)의 한량없는 고통에서 길이길이 떠나게 하여지이다."보살은 자기가 심은 선근(善根)을 이렇게 생각합니다."나는 모든 중생의 집이 되리라.그들의 번뇌를 끊어 해탈케 하기 위해서,나는 모든 중생의 귀이처가 되리라.그들이 공포에서 벗어 날 수 있도록,나는 모든 중생의 안락처가 되리라.그들이 구경(究竟:최종적인 경지)의 편안한 곳을 얻을 수 있도록,나는 모든 중생의 광명이 되리라.그들이 지혜의 빛을 얻어 무명(無明)의 어둠을 없앨 수 있도록,나는 모든 중생의 길잡이가 되리라,그들에게

걸림없는 큰 지혜를 주기 위해서."  

 

보살은 이와 같이 온갖 선근을 회향하여 중생들에게 모든 지혜를 얻게 합니다.여러 불자들이여,보살은 친구나 원수를 가리지 않고 두룰 회향합니다.왜냐하면 보살은 모든 것을 평등(平等)하게 보아 사랑과 미움을 초월(超越)했기 때문이며,항상 자비의 눈으로 중생들을 보기 때문입니다.만약 어떤 중생이 보살을 해치려는 마음을 일으킨다면,보살은 그중생을 위해 어진 스승이 되어 뛰어난 가르침을 말해 줍니다.이를 테면 어떠한 독(毒)으로도 큰 바다를 독물로 만들 수 없듯이, 중생의 어떠한 죄악(罪惡)으로도,보살의 보리심을 흐트러 놓을 수는 없습니다.보살이 보리심을 내어 모든 선근을 회향하는 것은 한 중생을 위해서도 아니고,한 부처님의 세계를 정화(淨化)하기 위해서도 아닙니다.한 부처님을 믿기 위해서도 아니고,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서도 아닙니다.보살은 오로지 모든 중생을 구호하기 위해서,온갖 선근을 회향하는 것입니다.모든 부처님의 세계를 정화하고,모든 부처님을 믿고 받들어 공양하며,모든 부처님이 말슴하시는 바른 가르침을 듣기 위해,온갖 선행(善行)을 최상의 깨달음에 회향합니다.

 

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이 회향(回向)의 공덕으로,일체 중생이 모든 중생이 모든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며,무너지지 않을 신심(信心)을 얻어지이다.바른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수행(修行)하여 지혜와 해탈을 얻고,걸림 없는 눈으로 중생을 평등하게 보며,마침내는 부처님 처소에 편히 머물러지이다."보살은 또 이렇게 생각합니다."중생들은 헤아릴 수 없는 온갖 나쁜 업을 짓고,그 때문에 한없는 괴로움을 겪고 있다.부처님을 보고도 섬기 줄 모르고,바른 가르침을 듣지도 못한다.내가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에 다니면서,그들을 대신해 고통을 받고,중생들을 해탈케 하자.내가 그 때문에 끝없는 고통을 받더라도 물러가거나 두려워하거나 게으르는 일이 없도록 하자"보살은 이와 같이 회향하며 집착하는 데가 없습니다.보살은 이와 같은 선근을 회향함으로 모든 허물을 더나 부처님의 참탄을 받습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

화엄경 보현행원품을 요약하였음

 

보현보살이 부처님의 거룩한 공덕을 찬탄하고 나서,보살들과 선재동자(善財童子)에게 말씀하셨다."부처님의 공덕은,시방세계 부처님들이 무량겁(無量劫:한량없이 오랜 세월)을 두고 계속해서 말씀할지라도 다할 수 없습니다.그러한 공덕(功德)을 이루려면 열 가지 큰 행원(行願)을  닦아야 합니다.첫째는:부처님께 예배(禮拜)공경(恭敬)함이요,둘째는:부처님을 찬탄(讚嘆)함이며,셋째는:여러가지로 공양(供養)함이요,넷째는: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함이며,다섯째는:남의 공덕을 같이 기뻐함입니다.여섯째는:설법(說法)해 주기를 청(請)함이며,일곱째는: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합니다.여덟째는:부처님을 본받아 배움이요,아홉째는:항상 중생의 뜻에 수순(隨順)함이요,열째는:모두 다 회향(回向)함입니다."

 

-부처님께 예배 공경함-

선재동자가 물었다."어떻게 예배 공경한다는 것은,온 법계,허공계,시방(十方)삼세(三世)모든 불국토의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께,보현(普賢)의 수행과 서원의 힘으로 깊은 (信心)을 내어,눈앞에 뵈온 듯이 받들고,청정한 몸과 말과 생각으로 항상 예배(禮拜)공경(恭敬)하는 일입니다.허공계(虛空界)가 다해야 나의 예배 공경도 다할 것이나,허공계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예배 공경도 다함이 없습니다.이와 같이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業)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煩惱)가 다해야만 나의 예배 공경도 다할 것입니다.그러나 중생의 세계와 업과 번뇌가 다함이 없으므로,나의 예배 공경도 다함이 없습니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임없어도 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부처님 공덕을 찬탄함-

"부처님을 찬탄(讚嘆)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온 법계,허공계,시방삼세의 모든 불국토에 수없이 많은 부처님이 계시는데,그 부처님 계신 데마다 수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것을,내가 깊은 지혜로 눈앞에 계신 듯이 알아보아서,변재천녀(辯才天女)보다 뛰어난 변재(말과 글)로써 오는 세월이 다하도록 그치지 않고,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는 일입니다.이와 같이 하여,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야만 나의 찬탄도 다할 것입니다.그러나 허공계와 중생의 세계와 업과 번뇌가 다할 수 없으므로,나의 찬탄도 다함이 없습니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임없어도,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널리 공양함-

"여러 가지로 공양(供養)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온 법계,허공계,시방삼세 모든 불국토의 부처님들께 여러 가지 훌륭한 공양거리로 공양(供養)합니다.꽃과 천상(天上)의 음악(音樂)과 천상의 바르는 향(향),뿌리는 향 등,이와 같은 낱낱무더기가 수미산(須彌山)만 합니다.여러 가지로 켜는 등은 우유등,기름등,향유등으로,심지는 수미산만하고,기름은 바닷물과 같이 많은데 이러한 공양거리로 항상 공양합니다.그런데 모든 공양 가운데 진리(眞理)의 공양(法供養:법공양)이 으뜸입니다.진리의 공양에는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공양,중생들의 고통(苦痛)을 대신(代身)받는공양,착한 일 하는 공양,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보리심(菩提心)에서 떠나지 않는 공양 등이 있습니다.

 

앞에 말한 물질적인 공양의 공덕을 법공양에 견준다면,잠깐 동안 법공양한 공덕의 백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고,천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며,숫자와 비유로도 비교될 수 없습니다.왜냐하면 부처님은 진리를 존중(尊重)하기 때문이며,부처님 말씀대로 수행(修行)함이 부처님을 출현(出現)케 하는 일이고,보살이 법공양을 하면 이것이 곧 부처님께 공양하는 거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이와 같이 수행함이 진실하고 법다운 공양인 것입니다.넓고 크고 가장 훌륭한 이 공양은,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야만 끝날 것입니다.그러나 허공계와 중생의 세계와 업과 번뇌가 다할 수 없으므로,나의 이 공양도 다함이 없습니다.이와 같이 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임없어도,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참회(懺悔)-

"업장(業障)을 참회(懺悔)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보살은 이렇게 생각합니다."내가 지나간 세상 끝없는 세월에,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탓으로,몸과 말과 생각으로 지은 악업(惡業)이 한량없고 끝이 없을 것이다,만약 그 나쁜 업에 어떤 형체(形體)가 있다면,끝이 없는 허공도 그것을 다 용납(容納)할 수없을 것이다.내가 이제 몸과 말과 생각의 청정한 업으로 ,진리의 세게에 두루한 많은 부처님과 보살들 앞에 지성(至性)으로 참회(懺悔)하고,다시는 나쁜 업을 짓지 않으며 항상 청정한 계율(戒律)의 모든 공덕(功德)에 머물겠다.이와 같이 하여,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해야만 나의 참회가 다할 것입니다.그러나 허공계와 중생의 세계와 중생의 업과 번뇌가 다할 수 없으므로 ,나의 참회도 끝나지 않습니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임없어도, 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같이 기뻐함-

"남의 공덕(功德)을 같이 기뻐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온 법계,허공계,시방삼세모든 세계의 많은 부처님께서 처음 발심(發心)하고,지혜를 위헤 복덕(福德)을 부지런히 닦을 때에,몸과 목숨도 아끼지 않고 무량겁(無量劫)을 지나면서,낱낱 겁 동안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머리와 눈과 손발을 보시 했었습니다.이렇듯 어려운 고행(苦行)을 하면서 갖가지 보살의 행을 원만히 갖추었고,온갖 보살의 지혜가 들어가 그 위 없는 보리를 성취했으며,열반에 든 뒤에는 그 사리(舍利)를 나누어 공양했었습니다.이와 같은 착한 일을 나도 같이 기뻐하며,시방세계의 온갖 중생들이 지은 털끝만한 공덕(功德)일지라도 내 일처럼 기뻐하며,성문(聲聞: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들은 제자)과 독각(獨覺:스스로 깨달은 수행자)과 배우는 이나 더 배울 것 없는 이의 공덕도 내가 같이 기뻐합니다.이렇게 해서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세게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내가 같이 기뻐함은 다하지 않을 것입이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이지 않아도,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설법해 주시길를 청함-

"설법해 주기를 청한다는 것은,온 법계,허공계,시방삼세 모든 불국토의 수없이 많은 부처님들께,몸과 말과 생각을 기울여 설법(說法)해 주기를 간청(懇請)하는 일입니다.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청법(請法)은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이지 않아도,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오래 사시기를 청함-

"부처님이 세상에 오래 계시기를 청한다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온 법계,허공계,시방삼세 모든 불국토의 부처님께서 열반(涅槃)에 드시려 하거나,또는 보살,성문,독각과,배우는 이와 더 배울 것 없는 이와 선지식들이 열반에 들려고 하면,오래오래 세상에 머무르면서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해달라고 간청(懇請)합니다. 이와 같이 하여,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간청하는 일은 다함이 없습니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임없어도,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 본받음이 배움-

"부처님을 본받아 배운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부처님은 처음 발심(發心)한 때로부터 정진(精進)하여 물러나지 않고,이루 다 말 할 수 없이 많은 몸과 목숨으로 보시하였습니다.살갗을 벗겨 종이를 삼으며,뼈를 쪼개 붓을 삼고,피를 뽑아 먹물을 삼아서 경전 쓰기를 수미산 높이만큼이나 하셨습니다.부처님은 진리를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에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것입니다.그런데 하물면 왕(王)의 자리나 궁전(宮殿)이나 동산 따위가 어찌 문제될 수 있으며,어려운 갖가지 고행(苦行)인들 문제될 수 있겠습니까?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서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시던 일이며,여러 가지 신통을 보이고 변화(變化)를 일으키며,많은 대중이 모인 곳에서 부처님의 화신(化身)을 나타내셨습니다.보살들이 모인 도량(道場)이나 성문과 독각이 모인 도량 이나,전륜성왕(轉輪聖王)과 작은 나라의 왕과  그 일족들이 모인 도량 혹은 바라문 부호 신도들이 모인 도량에서,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셔서,그들의 소원대로 중생의 근기(根機)를 성숙시키고,마침내 열반에 드신,부처님의 일들을 내가 모두 본받아 배웁니다.지금의 부처님께 하듯이,온 법계,허공계.시방삼세 모든 부처님의 자취도 본받아 배웁니다.이와 같이 하여,허공계가 다하고 중생의 세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내가 본받아 배우는 일은 다하지 않습니다.

 

-중생을 받들어 섬기고 기쁘고 이익되게 함(隨順)-

 

"항상 중생을 받들어 섬기고,기쁘고 이익되게 한다(隨順)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온 법계의 중생들은 여러 가지 차별(차별)이 있어서,알에서 태어나고,태(胎)나 습기에서 태어나고,혹은 저절로 나기도 합니다.그들은 땅과 물과 불과 바람을 의지해 살며,허공을 의지해 살고,풀과 나무를 의지해 삽니다. 여러 가지 몸과 형상(形象),수명(壽命),종족(種族),이름,성질(性質),소견(所見),욕망(欲望),뜻,위의(威儀),의복(衣服),음식(飮食)등으로 살아갑니다.발 없는것, 두 발 가진 것,네 발 가진것,여러 발 가진 것,형체 있는 것,형체 없는 것,생각 있는 것,생각 없는 것,생각 있는 것도 생각 없는 것도 아닌 것,이 모두에게 내가 그 뜻을 따라 주어 (수순하여)여러 가지로 섬기고 공양하기를 ,부모와 같이 하고 스승과 같이 받들며,아라한이나 부처님과 다름없이 대합니다.병(病)든 이에게는 의사(醫士)가 되어 주고,길 잃은 이에게는 바른 길을 가리켜 주며,어둔 밤에는 등불이 되고,가난한 이에게는 재물(財物)을 얻게 합니다.이와 같이 보살은 일체 중생을 평등(平等)하고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이 중생(衆生)을 수순(隨順:상대방에 맞추어 순순히 따름)하는 것은 곧 부처님께 순종(順從)하고 공양하는 일이 되고,중생들을 존중(尊重)하여 섬기는 것은 곧 부처님을 존중하여 반드는 일이 됩니다.중생들을 기뻐게 하는 것은 곧 부처님을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부처님은 자비심으로 바탕을 삼기 때문입니다.중생으로 인해 자비심을 일으키고,자비심으로 인해 보리심(깨달음의 마음)을 내고,보리심으로 인해 깨달음을 이루는 것입니다.넓은 모랫벌에 서 있는 큰 나무의 뿌리가 수분(水分)을 받으면,가지와 잎과 꽃과 열매가 무성(茂盛)하듯이,생사,광야(廣野)의 보리수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모든 중생은 뿌리가 되고,부처님이나 보살은 꽃과 열매가 됩니다.보살이 자비심으로중생을 이롭게 하며,지혜의 꽃과 열매를 맷게 됩니다.보살이 자비심으로 중생을 구제하면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이므로,보리는 중생에게 달린 것입니다.중생이 없으면 보살은 깨달음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중생에게 마음을 평등히 함으로써 원만(圓滿)한 자비(慈悲)를 성취(成就)하고,자비심으로 중생을 수순함으로써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것입니다.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수순해야 합니다.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 나의 수순은 다할 수 없습니다.순간순간 게속하여 끊임없어도 몸과 말과 생각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회향(공덕을 중생에게 돌려보냄)-

"모두 다 회향(回向)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처음 예배하고 공경함으로부터 중생의 뜻에 수순하기까지,그 모든 공덕(功德)을 법계,허공계에 있는 일체 중생에게 돌려보내,중생들로 하여금 항상 편안하고 즐겁고 병고(病苦)가 없게 합니다.

나쁜 짓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고,착한 일은 모두 이루어지며,온갖 나쁜 길의 문은 닫아 버리고,열반에 이르는 바른 길으은 활짝 열어 보입니다.중생들이 쌓아 온 나쁜 업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무거운 고통의 여러 가지 과보를 내가 대신 받으며,그 중생들이 모두 다 해탈을 얻고,마침내는 더없이 훌륭한 보리를 성취하도록 힘씁니다.보살은 이같이 회향합니다.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할지라도,나의 이 회향은 다하지 않을 것입니다.순간순간 계속하여 끊임없어도 ,몸과 말과 뜻에는 조금도 지치거나 싫어함이 없습니다."

 

-서원의 공덕-

(모든 어려움이 사라지고 부처님과 호법선신의 보호함)

"이것으로써 보살의 열 가지 큰 서원이 원만히 갖추어졌습니다.보살이 이같이 큰 서원(誓願)을 따라 나아가면,중생의 근기(根機)를 성숙(成熟)시키고 최상의 깨달음에 이르게 되며,보현의 수행(修行)과 원력(願力)을 성취(成就)하게 될 것입니다.어떤 사람이 굳은 신념(信念)으로 이 열가지 서원을 받아서,지니고 읽고 외우거나 한 구절이라도 쓴다면,다섯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죄업(罪業)이라도 이내 소멸(消滅)되고,이 세상에서 받은 몸과 마음의 병이나 갖가지 괴로움과 아주 작은 악업까지라도 다 소멸될 것입니다.그리고 온갖 마군(魔鬼의 무리),야차,나찰(羅刹)등 피를 빨고 살을 먹는 몹쓸 귀신들이 모두 멀리 떠나거나,착한 마음을 내어 가까이서 수호(守護)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현의 서원을 몸소 행하는 사람은 어떠한 세상에 다니더라도 달이 구름에 벗어나듯 거리낌이 없을 것이며,부처님과 보살들이 에경하고 일체 중생이 다 공양할 것입니다.중생들이 열 가지 원을 듣고,믿고 받아 지니며,읽고 외우고 남을 위해 해설(解說)하면,그 공덕은 부처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그러므로 이 서원(誓願)을 듣거든 의심(疑心)을 내지 말고,간절한 마음으로 지닐 것이며,일고 외우고 쓰며 남에게 말하여 베풀어 주십시오. 이와 같은 사람은 한 생각 동안에 모든 행과 서원을 다 성취할 것입니다.그 얻은 복덕은 함량없고,끝이 없으며,번뇌의 고통 바다에서 중생들을 건져내어 생사를 멀리 떠나게 하고,모두 다 안락(安樂)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선재동자와 많은 보살들은 보현보살이 부처님앞에서 말한 이와 같은 큰 서원을 듣고 한량없이 기뻐하였다.

 

-사념처경(四念處經)-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수행방법 중의 하나로 좌선수행인 구체적인 방법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캄마삿담마라고 하는 쿠루족의 마을에서 쿠루사람들과 함께 계셨다.부처님은 이와 같이 말슴하셨다."비구들이여,이것은 중생의 정화(淨化)를 위한,슬픔을 건너기 위한,괴로움의 소멸을 위한,진리의 길을 걷기 위한,열반의 증득을 위한 단 하나의 길,즉 사념처이다.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는 비구는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면서,몸에서 몸을 잘 알아 주의 깊게 관찰 하면서 머무른다.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면서 머무른다.

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면서 마음에서 마음을 잘 알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머무른다.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면서 진리에서 진리를 잘 알아 주의 깊게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몸에 대한 관찰,호흡에 대한 자각-

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가 어떻게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비구는 숯 속에서나 나무 아래에서나 빈 방에서나 가부좌를 하고,몸을 곧바로 세우고, 생각을 면전에 두고서 앉는다.그는 생각을 모으고서 숨을 들이쉬고,생각을 모으고서 숨을 내쉰다.길게 숨을 들이쉬면서는,"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잘 알고,길게 숨을 내쉬면서는"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잘 안다.짧게 숨을 들이쉬면서는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고 잘 알고,짧게 숨을 내쉬면서는 "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잘 안다.온몸에 대헤 느끼면서"나는 숨을 들이쉬리라."로 수련(修練)하고,온몸에 대해 느끼면서 "나는 숨을 내쉬리라,"고 수련한다.신체적 반응(行)을 가라앉히면서"나는 숨을 들이쉬고 내쉬리라."고 수련한다.비구들이여,마치 숙련된 도공(陶工)이나 그 제자가 물레를 오래 돌리면서.나는 물레를 오래 돌린다."고 잘 알고,짧게 돌리면서는 "나는 짧게 돌린다."고 잘 알듯이,이와 같이 비구는 길게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면서"나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나는 길게 숨을 내쉰다."고 잘안다.짧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는 "나는 짧게 숨을 들이쉰다."나는 짧게 숨을 내쉰다."고 잘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안팎으로 함께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또 몸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몸에서 소멸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몸에서 발생(生)했다가 소멸(消滅)해 가는 현상(現象)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다라"이것이 몸이다."라고 그 자각(念)이 확립된다.그는 초연(超然)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행동태도-

비구들이여,비구는 가거나 서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있거나 간에 "나는 가고 있다."나는 서 있다."나는 앉아 있다."나는 누워있다."고 잘 안다.이와 같이 어떠한 상태로든 그의 몸이 놓여 있는 그대로 그것들을 잘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안팍으로 함께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또 몸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몸에서 소멸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몸에서 발생했다가 소멸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몸이다."라고 그 자각(自覺)이 확립된다.그는 초연(超然)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執着)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완전한 이해-

비구들이여,비구는 앞으로 갈 때나 뒤돌아서 갈 때나 이를 완전히 알고,앞을 볼 때나 뒤를 볼 때나,먹고 마시고 씹으면서 맛 볼때도 뒤를 볼 때나,이를 완전히 알며,구부릴 때나 펼 때나 이를 완전히 안다.옷(袈裟)을 입거나 발우를 들 때나,먹고 마시고 씹으면서 맛 볼때도 이를 완전히 알며,대소변을 볼 때도 이를 완전히 안다.가면서나 서서나 앉아서나 장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말할 때나 묵묵히 있을 때도 이를 완전히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

 

- 몸에 대한 생각-

비구들이여,비구는 이 몸을 위로는 머리 끝에서 아래로는 발바닥까지 여러 가지 물질(物質)로 가득 차,피부(皮膚)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구별하면서,이와 같이 생각한다."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톱,치아,피부,살,힘줄,뼈,골수, 콩팥,염통,간,늑막,지라,허파,창자,창자내용물,위,위내용물,똥,담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액,오줌 등이 있다."고 비구들이여,마치 양쪽으로 입이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즉 벼,보리,녹두,콩,참깨,쌀 등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눈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어 열고서,"이것은 벼,이것은 보리,이것은 녹두,이것은 콩,이것은 참깨,이것은 쌀이다."라고 구별(區別)하는 것과 같이,비구는 이 몸을 위로는 머리 끝에서 아래로는 발바닥까지 여러 가지 물질로 가득 차,피부에 담겨져 있는 것으로 구별하면서,이와 같이 생각한다."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톱,치아,피부,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늑막,지라,허파,창자,창자내용물,똥,담즙,가래,고름,피,땀,지방,눈물,기름,침,콧물,관절액,오줌 등이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

 

-시대 요소에 대한 생각-

비구들이여,비구는 이 몸을 놓여진 그대로,배치된 그대로 요소(界)에 대해서 구별하면서,이와 같이 생각한다."이 몸에는 땅(地)의 요소,물(水)의 요소,불(火)의요소,공기(風)의 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마치 숙련된 백정(白丁)이나 그 조수(助手)가 소를 도살(屠殺)해서 부분별로 나누어 놓고,큰 길 네거리에 이를 벌려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이,비구는 이 몸을 놓여진 그대로,방치된 그대로 요소에 대해서 구별하면서,이와 같이 생각한다."이 몸에는 당의 요소,몸의 요소,불의 요소,공기의 요소가 있다."고 이와 같이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

 

-공동묘지에 대한 아홉 가지 생각-

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共同墓地)에 버려진 시체(屍體)가 죽은 후 하루,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서 부풀고 검푸르러지고 썩어 가고 있는 것을 보고,이 몸을 관찰하되."이 몸도 이와 같은 현상(法)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까마귀에게 먹혀지고,매에게 먹혀지고,독수리에게 먹혀지고,개에게 먹혀지고,여우에게 먹혀지고,표법에게 먹혀지고,늑대에게 먹혀지고,다른 여러 가지 살아 있는 것들에 의해 먹혀지고,다른 여러 가지 살아 있는 것들에 의해 먹혀지는 것을 보고,이 몸을 주시하되"이 몸도 이와 같은 현상(現狀)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피와 살이 묻어 있는 체로,힘줄에 얽히어 해골(白骨)로 변해 있음을 보고, 이 몸을 주시하되"이 몸도 이와 같은 현상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살은 없고 피만 묻어 있는 채로 힘줄에 얽히여 해골로 변해 있음을 보고.....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피와 살은 없고 힘줄에 얽히여 해골로 변해 있음을 보고......

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마디가 연결되지 않고 손뼈,발뼈,정강이뼈,골반뼈,척추뼈,두개골 등이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음을 보고.......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일년도 안 되어서 뼈더미가 되여 있음을 보고....

 

비구들이여,비구는 마치 공동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마저 썩어문드러져,가루가 되어 있음을 보고,이 몸을 주시하되"이 몸도 이와 샅은 현상(現狀)에 의해 이와 같이 되어서,그것을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觀察)하면서 머무르며,안팎으로 함께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몸에서 소멸(消滅)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몸에서 발생(發生)했다가 소멸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이것이 몸이다."라고 그 자각(自覺)이 확립된다.그는 초연(超然)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執着)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감각에 대한 관찰-

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가 어떻게 감각(感覺)에서 감각을 관찰(觀察)하면서 머무르는가?여기에 비구는 즐거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고,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는"나는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잘 알며.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 물질적(物質的)즐거운 감각(感覺)을 느끼면서는"나는 물질적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고,정신적(精神的)즐거운 감각을 느끼면서는 "나는 정신적 즐거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물질적 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는"나는 물질적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알며, 정신적 괴로운 감각을 느끼면서는"나는 정신적 괴로운 감각을 느낀다."고 잘안다.

 

물질적으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나는 물질적으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고 잘알고.정신적으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나는 정신적으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끼면서는"나는 정신적으로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을 느낀다."고 잘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감각(感覺)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 밖으로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안팍으로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또 감각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감각에서 소멸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이것이 감각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에서 감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마음에 대한 관찰-

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가 어떻게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 여기에 비구는 탐욕(貪)이 있는 마음을"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고,탐욕이 없는 마음을"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성냄(嗔)이 있는 마음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을"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어리석음(癡)이 있는 마음을"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주의깊은(攝心)마음을"주위깊은 마음이라"고 알며.산란(散亂)한 마음을 산란 마음이라"고 안다.넓은 마음을"넓은 마음을"넓은 마음이라"고 알며,넓자 않은 마음을 "넓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유상(有上)의 마음을"유상의 마음이라"고 알며,무상(無上)의 마음을"무상의 마음이라"고 안다.고정된(定)마음을 "고정된 마음이라"고 알며,고정되지 않은 마음을 "고정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해탈(解脫)되 마음을 "해탈된 마음이라"고 알며,해탈되지 않은 마음을"해탈되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그래서 관찰의 정도나 이해의 정도에 따라"이것이 마음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이와 같이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현상에 대한 관찰-

(다섯 가지 장애)

비구들이여,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蓋)현상에서 현상(現狀)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는 어떻게 다섯 가지 장에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 여기에 비구는 안으로 애욕(愛慾)이 있으면"내 안에 애욕(愛慾)이 있다."고 잘 알고,안으로 애욕이 없으면"내 안에 애욕이 없다."고 잘 안다.그는 도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애욕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이미 생겨난 애욕이 소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잘알며,이미 소멸(消滅)된 애욕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안으로 성냄이 있으면"내 안에 성냄이 있다,"고 잘 알고,안으로 성냄이 없으면"내 안에 성냄이 없다,"고 잘 안다.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성냄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이미 생겨난 성냄이 소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며,이미 소멸된 성냄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안으로 나태와 졸음이 있으면"내 안에 나태와 졸음이 있다고" 있다 고 잘 알고...안으로 동요(棹擧)와 걱정(悔)이 있으면"내 안에 동요와 걱정이 있다 "고 잘알고,....

 

안으로 의혹(疑)이 이으면, "내 안에 의혹이 있다."고 잘 알고,안으로 의혹이 없으면,"내 안에 의혹이 없다"고 잘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현상(現狀)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 밖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이것이 현상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가지 장애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다섯 가지 쌓임-

비구들이여,비구는 다섯 가지 쌓임(溫)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는 어떻게 다섯 가지 쌓임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여기에 비구는"물질(色)은 이러하고,물질이 생겨남(集)은 이러 하며,물질의 소멸함(滅)은 이러하다,감각(感覺)(受:느낌)은 이러하고,감각의 생겨남은 이러하며,감각의 소멸함은 이러하다.지각(인식:想)은 이러하고,지각의 생겨남은 이러하며,지각의 소멸함은 이러하다.의도(意圖:반응,行)는 이러하고,의도의 생겨남은 이러하며.의도 의 소멸함은 이러하다.의식(識)은 이러하고,의식의 생겨남은 이러하며,의식의 소멸함은 이러하다,"고 잘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 밖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 "이것이 현상이다."라고 그 자가기 확립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는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 까지 쌓임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여섯 가지 안팍의 기관-

비구들이여,비구는 여섯 가지 안팍의 기관(器官:六處)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는 어떻게 여섯 가지 안팍의 기관의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 여기에 비구는눈(眼)을 알고,(눈의 대상인)물질(色)을 잘 알며, 그 두 가지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結)을 잘안다.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결과물이 생겨나면 그대로그것을 잘알면 그대로 그것을 잘안다.그는 구(耳)를 잘 알고,(귀의 대상인)소리(聲)를 잘알며,그 두 가지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을 잘 안다.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결과물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이미 생겨난 결과물이 소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며,이미 소멸된 결과물이 이후로 생겨나지 앟으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

 

그는 코(鼻)를 잘 알 고,(코의 대상인)냄새(香)를 잘 알며,그 두 가지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을 잘 안다,그는......그는 혀(舌)를 잘 알고,(혀의 대상인)맛(味)을 잘알며,그 두 가지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을 잘 안다....그는 몸(身)을 잘 알고,(마음의 대상인)현상(法)을 잘 알며,그 두 가지에 의해 생겨난 결과물을 잘 안다.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결과물이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이미 생겨난 결과물이 소멸해지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며,이미 생겨난 결과물이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잘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밖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서"이것이 현상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팍의 기관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

비구들이여,비구는 일곱 가지 깨달음 요소(七覺)의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런데 비구들이여,비구는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 요소의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여기에 비구는 안으로 자가(自覺)의 깨달음 요소의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여기에 비구는 안으로 자각(自覺)의 개달음 요소(念覺)가 있으면"내 안에 자각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잘 알고,안으로 자가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내 안에 자가의 개달음 요소가 없다."고 잘 안다.그는 또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자각의 깨달음 요소가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알고,이미 생겨난 자가의 깨달음 요소가 발전되어 완성되면 그대로 그것을 잘안다. 그는 안으로 진리탐구(釋法)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내 안에 진리탐구의 깨달음 요소가 있다."고 잘 알고,안으로 진리탐구의 깨달음 요소가 없으면'내안에 진리탐구의 깨달음 요소가 없다."

고 잘안다.그는 도 아직 생겨나지 않은 진리탐구의 깨달음 요소가 생겨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알고,이미 생겨난 진리탐구의 깨달음요소가 발전되어 완성되면 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

 

그는 안으로 노력(精進)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그대로 그것을 잘안다. 그는 안으로 평온(善)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그는 안으로 평온(輕安)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그대로 그것을 잘안다.그는 안으로 삼매(定)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그대로 그것을 잘안다.그는 안으로 무심(捨)의 깨달음 요소가 있으면...그대로 그것을 잘 안다.이와 같이 안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밖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안팍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또 현상에서 생겨나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현상에서 소멸해 가는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레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이것이 현상이다.'라고 그 자가이 화길비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네 가지 진리-

비구들이여,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그런데 비구는 어떻게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현상에서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는가?여기에 비구는"이것은 괴로움(苦)이다."라고 있는 그대로(如實)를 잘 알고"이것은 괴로움의 원인(集)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알고."이것은 괴로움의 소멸(滅)이다."라고 잘 알고."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길(道)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잘 안다.

 

-괴로움의 진리-

비구들이여,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태어남(生)도 괴로움이고,늙음(老)도 괴로움이고,병듦(病)도 괴로움이고,죽음(死)도 괴로움이며,슬픔(애).비탄(悲),아픔(苦),우울(愛),불안(惱)도 괴로움이고 싫은 것과 만나는것도 괴로움(怨僧會苦)이고,사랑하는 것과 헤여짐도 괴로움(愛別離苦)이고,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求不得苦)이다.다시 말해서 집착(執着)에서 생긴 다섯 가지 쌓임(五取蘊)은 괴로움이다.집착에서 생긴 다섯 가지 쌓임의 괴로움이란 무엇인가?집착에서 생긴 물질(色)의 쌓임,집착에서 생긴 감각(受)의 쌓임,집착에서 생긴 지각(想)의 쌓임,집착에서 생긴 의도(반응,行

의 쌓임,집착에서 생긴 의식(識)의 쌓임,이를 일러 집착에서 생긴 다섯 가지 쌓임의 괴로움이라 한다.

 

-괴로움의 원인-

비구들이여,괴로움 원인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다음생(後生)으로 이끌고,쾌락과 탐욕을 수반하며,여기저기 만족을 찿아다니는 욕망(愛),즉 감각적 욕망(欲愛)재생적 욕망(有愛),허무적 욕망(無有愛)이다.이 욕망은 어디에서 일어나고 어디에서 자리잡는가?세상(마음과 물질의 현상)에서 좋아하는 것이나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세상에서 좋아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이란 무엇인가.눈(眼)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

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귀(耳)는...,코(鼻)...혀(舌)는...몸(身)은...마음(意)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마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물질(색)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며...소리(聲)는...,냄새(香)...,맛(味)...,접촉(觸)...,은 현상(法)...,은 세상에서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마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

 

눈의 의식(眼識)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며...귀의 의식(耳識)...코의 의식(鼻識)...혀의 의식(舌識)...몸의 의식(身識)...

마음의 의식(意識)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마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눈과의 접촉(眼觸)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며...귀와의 접촉(耳觸)은...코와의 접촉(鼻觸)은...,혀와의 접촉(舌觸)은...,몸과의

접촉(身觸)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눈과의 접촉에서 생긴 감각(眼觸所生의 愛)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며...,귀하의 접촉에서 생긴 감각은...,코와의 접촉에서 생긴 감각은...,마음과의 접촉에서 생긴 감각(意觸所生의 愛)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 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물질의 인식(色想)은 세상에서...,소리의 인식은...,냄새의 인식은...,맛의 인식은...,접촉의 인식은...,현상의 인식은(法相)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

 

물질에 대한 정신적 반응(色想)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내지...현상에 대한 정신적 반응(色想)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물질에 대한 욕망(色愛)은 세상에서...내지...현상에 대한 욕망(법愛)이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자리잡는다.물질에 대한 관념(色尋)은 세상에서...내지...현상에 대한 관념(法尋)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여기에서 자리잡는다.물질에 대한 궁리(色伺)는 세상에서...내지...현상에 대한 궁리(法伺)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일어나고 여기에서 자리잡는다. 비구들이여,이를 일러:괴로움 원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괴로움 소멸의 진리-

비구들이여,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 욕망(愛)의 남김없는 상태인 이욕(離慾),멸진(滅盡),해탈(解脫),무염(無染)이다.이 욕망은 어떻게 버려지고 어떻게 소멸되는가? 세상(마음과 물질의 현상)에서 좋아하는 것이나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버려지고 여기에서 소멸된다.세상에서 좋아하는 것과 즐거워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눈(眼)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이다.여기서 이 욕망은 버려지고 소멸된다.귀(耳)는...,코(鼻)...,혀(舌)...,몸(身)은...,마음(意)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버려지고 여기에서 소멸된다.물질(색)은 세상에서...,소리(聲)...,냄새(香)...,맛(味)은...,접촉(觸)...,현상(法)은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 하는 것,여기에서 이 욕망은 버려지고 여기에서 소멸된다.눈의 의식(眼識)은 세상에서...눈과의 접촉(眼觸)은 세상에서...,눈과의 접촉에서 생긴 감각(眼觸所生의 受)은 세상에서...물질의 인식(色想)은 세상에서...,물질에 대한 정신적 반응(色想)은 세상에서...,물질의 대한 욕망(色愛)은 세상에서...,물질에 대한 관념(色尋)은 세상에서...,물질에 대한 궁리 (色伺)는 세상에서...내지...현상에 대한 궁리(法伺)는 세상에서 좋아하는 것이고 즐거워하는 것,여기에서이 욕망은 버려지고 여기에 소멸된다.비구들이여,이를 일러"괴로움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괴로운 소멸의 진리(八正道)-

비구들이여,괴로움 소멸로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란 무엇인가?이것은 성서로운 여덟 가지의 길,즉 올바른 견해(正見),올바른 생각(正思),올바른 언어(正語),올바른 행위(正業),올바른 직업(正命),올바른 노력(正精進),올바른 자각(正念),올바른 선정(正定)등이다.올바른 견해란 무엇인가? 괴로움에 관해서 확실히 알고,괴로움의 원인에 관해서 확실히 알고,괴로움의 소멸에 관해서 확실히 알고,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길에 관해서 확실히 아는 것,이를 일러 올바른 견해라고 한다.올바른 생각이란 무엇인가?욕심에서 벗어나려는 생각(無慾),증오하지 않으려는 생각(無憎惡),남을 해하지 않으려는 생각(無害),이를 일러 올바른 생각이라 한다.올바른 언어란 무엇인가?거짓말(兩舌)을 않고,헐뜯는 말(惡口)을 않고,거친 말(妄語)을 않고,쓸데없는 말(裿語)을 하지 않는것,이를 일러 올바른 언어라고 한다.올바른 행위란 무엇인가?생명체를 죽이지 않고(不殺生),주지 않은 것은 갖지 않으며(不與取),잘못된 애욕 행위를 하지 않는 것(不邪淫),이를 일러 올바른 행위라고 한다.

 

올바른 직업이란 무엇인가? 성스러운 제자들은 잘못된 생활수단 (邪命)을 버리고,올바른 생활수단으로써 삶을 영위한다.이를 일러 올바른 직업이라고 한다.올바른 노력이란 무엇인가?비구는 아직 생기지 않은 악(惡)이나 좋지 않은 행위(法)가 일어나지 않도록 의지를 세워 노력하고,힘을 기울여 마음을 꼭 잡으려 애쓰고,이미 일어난 악이나 좋지 않은 행위를 버리리기 위해 의지를 세워 노력하고,힘을 기울여 마음을 꼭 잡아 애쓴다.또 아직 생기지 않은 선한 행위가 일어나도록 의지를 세워 노력하고,힘을 기울여 마음을 꼭 잡으려 애쓰고,이미 일어난 선한 행위는 머물러 흩어지지 않도록 기르고,충만하게 이루어 성취케 하려는 의지를 세워 노력하고,힘을 기울여 마음을 꼭 잡아 애쓴다.이를 일러 올바른 노력이라 한다.

올바른 자각이란 무엇인가?비구는 열심히 몸에서 몸을 잘 알아 주의깊게 관찰한다.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면서 감각에서...마음에서...내지...현상에서 현상을 열심히 잘 알아 주의깊게 관찰하면서 머무른다.세상의 탐욕과 근심을 버리면서,이를 일러 올바른 자각이라 한다.

 

올바른 선정이란 무엇인가?비구는 애욕을 여의고,좋지 않은 행위(不善法)를 여의고서,관념(尋)과 궁리(伺)를 수반하고,무집착에서 생긴 기쁨(喜)과 즐거움(樂)의 초선(初禪)을 얻어 머무른다.다음으로 관념과 궁리를 가라앉힌 후 ,안으로 평온과 마음의 지중을 얻음으로써 관념과 궁리에서 벋어나,삼매(定)에서 생긴 기쁨과 즐거움의 제2선(第二禪)을 얻어 머무른다.다음으로 기쁨을 여의고,무심(捨),자각(念),지혜(智)에 머무르고 몸으로는 즐거움을 감지하면서,성인들이 말하는 "무심한 이는 자각하여 즐거움에 머무른다."는 제3선(第三善)을 얻어 머무른다.다음으로 즐거움도 괴로움도 버리고,전에 느껴던 희열(悅)과 우울(憂)도 소멸된,따라서 괴로움도 기쁨도 아닌(불고불락),무심(捨)과 자각(念)의 청정한 제사선(第四禪)을 얻어 머무른다.이를 일러 올바른 선정이라 한다.비구들이여,이를 일러 "괴로움 소멸로 이르는 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이와 같이 안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고,박으로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르며...그래서 관찰의 정도와 이해의 정도에 따라"이것이 현상이다."라고 그 자각이 확립된다.그는 초연하게 머무르고,세상의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비구들이여,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현상에서 현상을 관찰하면서 머무른다.

 

-사념처의 수행결과-

비구들이여,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7년 동안,이와 같이 닦는 자는 두 가지 결과 중 어느것이나,즉 바로 보이는 현상(現法)

에서 최고의 지혜 또는 나머지 생애에서 아나함(不還:깨달음의 한경지)의 경지가 기약된다.비구들이여,7년동안은 제쳐두고라도 누구든지 이 사념처를 6년동안...내지...5년 동안...4년 동안...3년 동안...2년 동안...1년 동안. 이와 같이 닦는 자는 두 가지 결과 중 어느 것이나,즉 바로 보이는 현상에서 최고의 지혜 또는 나머지 생애에서 아나함의 경지가 기약된다.1년 동안은 제쳐두고라도,비구들이여,6개월 동안...내지...5개월 동안...4개월 동안...3개월 동안...2개월 동안...1개월 동안...이와 같이 닦는 자는 두 가지 결과 중 어느 것이나,즉 바로 보이는 현상에서 최고의 지혜,도는 나머지 생애에서 아나함의 경지가 기약된다.""바구들이여,이것은 중생의 정화(淨化)를 위하고,슬픔을 건너기 위하고,괴로움의 소멸을 위하고,진리의 길을 걷기 위하고,열반의 증득을 위한 단 하나의 길,즉 서념처이다.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에 설해진 것이다.세존께서 이를 설하시자,기쁨으로 충만한 비구들은 세존께서 설하신 바를 환희했다.                          -  제 6 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