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

불교에 관한 약간의 오해

추운보광 박 근 석 2015. 10. 9. 20:27

 

 

 

 

 

솔리드켈리아트 기법으로 제작한 천수관음도 (보광작품)

 

 

붓다의 가르침을 잘 알지 못하는 현대 유럽인들 사이에는 많은 잘못된 견해들이 퍼져있다.

또한 불교를 배척하는 종교들 쪽에서 약간은 고의적으로,또 약간은 종교라기보다 철학에

가까운 불교의 미묘한 초월론을 알지 못함으로써,그릇된 설명을 제기하고있다.

철학이자 인생 과학인 불교는 지금까지 서양에서 발달한 어떤 철학이나 과학 체계보다도

더 포괄적이다.왜냐하면 불교는 인간 이하의 가장 낮은 차원으로부터 가장 높이 진화한 존재들의 차원에 이르기까지의 수많은 존재 양상 전반에 걸친 다채로운 삶의 모든 면을 포용하기 때문이다.달리 말하면, 불교는 삶을 시작도 끝도 없는 분리 불가능한 전체성으로 인식된다.

1) 혼의 가르침에 관하여

일반 기독교에서 믿고 있는 바에 따르면 혼(soul)이 인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육체가 죽은 후에는 지복이나 고통 속에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고 하는데, 불교는 그와 같은 오류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와 반대로 시간 속에서 시작된 것은 반드시 시간 속에서 끝난다고 가르친다.

설사 혼의 선재 (先在)를 이론적으로 허용한다 하더라도, 혼( atma)이 개인화된 정신의 실체로서 분해되거나 변화하지 않고 영속한다는 믿음은 인간을 정신적으로 속박하면서 삶과 죽음의 끝없는 굴레에 묶이게 만든다. 올바른 지식을 통해 그런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해방은 없다.

해방(열반)은 한정된 인간적 의식을 넘어선 초세속적 의식을 달성함으로서 찾아온다.

서양인들이 불멸을 믿는다면 그것은 거의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정령 신앙에 기반을 두고있다.그래서 개인적 자기(self) 가 모든 다른자기들 ( selves ) 과 영원히 분리된 채로 존재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불교측의 입장이 그들에게는 의식적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는 것처럼 들린다.

혼(soul) 이 있는냐 없는냐 하는 문제- 아(我;atma) 와 무아(無我 ; anatma)의 문제- 는 불교 심리학의 모든 문제들 중 어쩌면 가장 어렵고 곤란한 것이지만, 다음의 직유법을 통해 단순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70세의 노인은 10세였을 때의 소년이 아니고, 10세의 소년은 70세의 노인이 아니다.그러나 둘 사이에는 의식의 연결이 있다.마찬가지로 노인은 다시 태어날 신생아 아니지만,동일 인물은 아니라 해도 그 둘 사이에는 인과 관계가 있다.

어쨌든 이 두경우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즉 소년과 노인 사이에서는 일반적으로 기억이 이어진다.이에 비하여 노인과 신생아 사이에서는 그가 죽기 전에 요가 수행을 했다든지 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하면 윤회계적 (세속적)의식속의 기억은 끊어지지만, 우리가 보는 바  대우주적 (초세속적) 의식의 소우주적 측면인 무의식 속에서의 기억은 그렇지 않다.

그리하여 이 문제에 대해 박학한 불교도들도 그랬고 고(故) 라마 카지 다와삼둡도 주장했듯이, 대우주의 소우주적 표현인 "비개인원리"가 윤회계의 모든 존재 및 존재 여건을 통해 영속할 뿐 개인( 혼,또는 세속적)의식은 영속하지 않는다.이승에서 청년은 노인으로 바뀌고 이승에서의 노년과 사망은 중유(中有)를 거쳐 재탄생으로 이어지지만 그것은 인과율과 연속성의 연속성의 법칙 아래서 끝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비개인 의식 .원리는 어떤 이름이나 육체 및 윤회적인 마음을  통해 나타난 개인과는

어떤 식으로든 같을 수 없다.이름이나 육체 및 윤회적인 마음은 단지 비개인적 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비개인적 의식은 비윤회적이고 창조되거나 태어나거나 형상화되지 않으므로 인간의 개념과 정의(定義)를 넘어서며, 따라서 오직 상대적으로만 존재하는 (절대적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그것은 시작도 끝도없다.

이런한 참 상태를 알지 못하고 윤회계의 허망한 쾌락을 갈구하는한 윤회적인 마음은 죽음과 재탄생의 굴레 속에 머문다.

불성을 깨우쳐 무지와 갈망을 극복할 때에만 참 상태가 달성되며, 윤회적인 마음인 개인 (혼) 의식은 시간이나 공간과 마찬가지로 단지 상대적인 존재일 뿐 절대적 존재일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불법(교의)의 지고한 목적은 붓다 자신이 강조했듯이 " 마음의 해방 " 을 달성하는 것이다. 즉.

" 그러므로 제자들이여, 거룩한 삶이란 자비,인기, 명예,지위.총명함, 삼매의 축복이 아니라 확고하여 변하지 않는 " 마음의 해방 不動心解脫 이다.제자들이여, 이것이 거룩한 삶의 목적이고,

이것이 핵심이며,목표이다."

여기서의 "마음" 은 대우주적인 마음의 소우주적 측면이며," 마음의해방 " 은 조금 전에 말햇듯이 무지의 극복을 암시한다. 그것은 다시 말해 초세속적 마음(의식) - 태어나지 않고 형상화되지 않는 참 상태의 마음 - 의  환상적 반영물인 세속적 마음(의식)의 복잡한  내용물을 모두 초월한다는 뜻이며, 인과율에 의한 윤회적인 마음의 연속성 저편에 윤회계를 초월한 비개성의 원리가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세속적 욕망을 버리고 감각을 즐기지 않을 때 그 불은 연료가 없으므로 꺼질 수밖에 없다.

수행의 첫단계에서는 열반이 세속적인 마음의 초세속적 목표가 된다. 부시와 부싯돌과 부싯길을 바르게 사용하면 불을  피울 수 있듯이, 오온을 바르게 사용하면 열반에 이를 수 있다.

아란한 (또는 완성된 인간)은 그의 생명 활동이 최종 결실을 이룸으로써 윤회계의 모든 속박- 탐욕과 분노, 공포를 비롯한 모든 속된 마음- 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이다.

그는 카르마의 씨앗인 모든 세속적 요소를 근절했다. 아란한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한 그는  오온(吳蘊)을 계속 소유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를  윤회계에 머물도록 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찿아와 그가 오온을 버릴 때 그의 세속적인 마음(의식)도 사라진다. 이후 그는 초세속적인 마음 (의식) 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바 , 이것이 참다운 "마음의 해방"이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는 근본적으로 실천을 위한 요가 쳬계이다. 인간은 육체도 아니고 육체의 정신 기능도 아니며 그들 육체와 정신 기능은 바르게 사용할 때 최고의 성취를 이루게 하는 도구일 뿐임을 알게 하는 그러한 요가 수행을 붓다는 항시 가르친다. 그는 많은 성취(成就; siddhi)

들 중에서 과거세를 기억하는 일, 윤회계의 모든 존재 여건을 초월하는 일, 그리하여 아라한처럼 윤회계 전체와 수많은 존재 여건의 승리자가 되는 일을 설했다. 이 승리자는 스스로 원한다면 의식의 연속성을 잃음 없이 굴레 없는 사자가 산들 사이를 배회하듯 자유로히 배회할 수있다 고 대승 불교의 현인들은 말한다. 그리고 이런 비유적인 말은 "영원한 낙원"과 같은 최종 상태가 있을 수 없음을, 우주 자체가 영원히 죽음과 재탄생에 예속되어 있고 "한마음" 은 그것을 꿈꾸는  자 Dreamer이며 그것의 근원 Source이며 그것의 근원Source 이자 유지자 Sustai-ner이다....

 

티벳 밀교 요가 중에서..............10월/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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